그 아득한 햇빛 아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러니 당신이어도 이상할 것이 없고 나일 것도 같은 사람이 꽃을 심고 있는 곳 그 곳에서 노랗고 빨갛고 파란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없는 빛깔을 지닌 꽃들이 조금씩 늘어나
이내 한가득한 꽃밭 내 눈물 속에 몰래
몰래 살고 있는 바로 그 꽃밭에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사) 中
처음이라는 시간은 우리들의 어떤 기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이며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이기도 한,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이기도 한, 그런 인연의 한때를 우리는 함께 살았더랬습니다. 한 사람이 꽃을 심는 꽃밭에서요. 지금도 우리는 이런저런 빛깔로 살아가고 있으니 따뜻하고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김민율 < 시인(2015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