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명백한 개악"…한국노총 "사회적 대화가 투쟁보다 어려워"
다른 길 가는 양대 노총, '탄력근로제 합의' 평가도 엇갈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 합의를 계기로 양대 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엇갈린 길에 들어섰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가 19일 발표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 합의 결과에 대한 양대 노총의 반응은 상반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 합의는 노동시간을 놓고 유연성은 대폭 늘렸고 임금 보전은 불분명하며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넘겨버린 명백한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 경총, 한국노총이 결국은 야합을 선택했다"며 노·사·정 3주체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비판은 이번 합의가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확대한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3개월이 넘는 단위 기간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1일이 아닌 1주 단위로 노동시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고 이를 노동자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되도록 한 것은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대폭 강화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경사노위에서 합의문 발표 직후 브리핑에 참석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합의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 위원장은 "책임 있는 조직으로서 사회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며 "사회적 대화는 사실 투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대 노총의 상반된 반응은 기본적으로 이번 합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것이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입장차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시각이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말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불참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노총이 당분간 경사노위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노동계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장외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는 투쟁 노선을 택했다.

다음 달 6일에는 하루 동안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된 직후 "경사노위를 이끌고 가겠다"며 노동계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를 계속할 의지를 재확인했다.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가 이날 노·사의 첨예한 쟁점인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 데도 사회적 대화에 대한 회의론의 확산을 막으려는 한국노총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길 가는 양대 노총, '탄력근로제 합의' 평가도 엇갈려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는 한국노총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한국노총은 명실상부한 국정의 동반자"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사노위에 남아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 한국노총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경영계 쪽으로 기울어진 정책을 밀어붙이는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를 활용하려고 할 경우 한국노총은 '거수기'로 전락하고 노동계 내부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경영계 요구에 따른 의제인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도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과 같은 개혁 의제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관철할 경우 한국노총은 노동계를 대표해 노동자의 권익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경사노위 참여가 한국노총에는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두고 엇갈린 길에 들어선 것은 이들이 경쟁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조합원 수가 100만명을 돌파해 '제1노총' 지위를 지켰지만, 민주노총은 90만명을 뛰어넘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조합원 증가 속도는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이 빠르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계속하고 민주노총은 장외 투쟁에 나선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양대 노총의 조직 확대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개혁 의제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하나둘 실현되면 한국노총의 조직 확대가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 대화가 경영계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이 될 경우 한국노총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에 대한 지지가 확산할 수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며 "양대 노총의 앞길은 정부가 사회적 대화에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