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두 중역의 氣싸움…승패는 주차장 지정석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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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글로 출근한다
그레고르 파르마 지음 / 김희상 옮김
세종서적 / 328쪽 / 1만6000원
진화생물학 관점서 바라본 직장생활
과장이 부장 뒤통수를 보는 이유?
직급 높을수록 걷는 속도 빨라져
종잡을 수 없는 상사 '미친 개 전략'
남용하면 자기 편마저 잃을 수도
그레고르 파르마 지음 / 김희상 옮김
세종서적 / 328쪽 / 1만6000원
진화생물학 관점서 바라본 직장생활
과장이 부장 뒤통수를 보는 이유?
직급 높을수록 걷는 속도 빨라져
종잡을 수 없는 상사 '미친 개 전략'
남용하면 자기 편마저 잃을 수도
‘과장은 부장의 뒤통수를 본다’. 《우리는 정글로 출근한다》의 목차 중 하나다. 지위에 따라 걷는 속도가 다르다는 의미다. 지위가 높을수록 걸음이 빠르기 때문이다. 남성에 한해서다. 그건 또 왜일까.
책은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직장생활의 일상을 해석한다. 행동생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오스트리아 도나우대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행동 연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업 현장을 찾아 강연과 컨설팅도 하고 있다. 저자는 걷는 속도와 지위의 관계도 진화론으로 풀어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채집으로 분업이 이뤄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냥에 성공해 좋은 먹이를 자랑하는 것은 성공적인 번식의 결정적인 기준이 됐다. 이를 과시하기 위해 허리를 세우고 근육을 내보이는 것뿐 아니라 성큼성큼 빠르게 걸었다. 회사 안을 오갈 때 대리가 과장에게 추월당하고 과장은 부장의 뒤통수를 보는 일이 잦아지는 이유다. 사장이나 회장 등 조직의 수장이 되면 이런 ‘신분 상징 놀이’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회장은 ‘청소부처럼 걷는 것’을 즐긴다. 자신의 지위를 굳이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속도와 시간에 대한 개념은 경제적인 측면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책은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나라별로 걷는 속도와 일을 처리하는 속도, 공공 시계의 정확성 등을 조사했더니 종합 1위는 스위스였고 꼴찌는 멕시코였다. 상위 10개 국가 중 서유럽이 아닌 곳은 일본과 홍콩뿐이었다. 책에 언급돼 있진 않지만 한국은 일은 18위, 보행 속도는 20위, 시계 정확성은 16위였다. 더운 도시에 비해 추운 곳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문화일수록 시간관념이 철저했다. 저자는 “무엇보다 삶의 속도가 빠른 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한 지표는 경제”라며 “경제가 활발한 도시가 시간이 빨리 갔다”고 서술한다.
회사 내 지위의 상징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외부에서 영입돼 회사에 처음 출근하는 임원이 있다. 그가 같은 직급의 임원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기존 세력과 새로운 권력. 두 임원 중 누구에게 더 힘이 실릴지 몰라 직원들은 눈치만 살핀다. 힘의 우위를 파악하려면 두 사람의 퇴근길을 지켜보면 된다. 회사에서 제공한 두 사람의 차량 중 누구의 차가 출입구에 더 가까운 지정석에 있는지가 답이다. 저자는 “주차 자리는 신분의 상징”이라며 “이런 상징은 다른 직원들에게 자신도 그 위치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다”고 설명한다. 업무용 차량과 휴대폰, 회사 내 자리와 책상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신분 상징을 위한 투쟁에 너무 많은 힘이 쏠려서도 안 된다. 대기업들이 어떤 직위가 되면 어떤 신분의 상징을 얻게 되는지를 정해두는 이유다.
정글 같은 회사, 종잡을 수 없는 상사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도 힌트를 준다. 클럽에서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회의에 늦은 김 대리. 이 부장은 술 냄새를 풍기며 옆에 앉은 김 대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김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의 잘못된 단어 하나를 두고 이 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부장의 고성이 층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상대가 경계를 넘었음에도 묵묵히 지켜보다가 별거 아닌 일에 길길이 날뛰며 철저히 짓밟는 것. 진화생물학에서는 이를 ‘미친개 전략’이라고 부른다. 언제 물릴지 몰라 상대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면 평소 신중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폭군과 독재자들이 활용해온 ‘잔혹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이라면서도 “남용하면 자기편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뒷담화는 생존 정보를 얻는 창구다’ ‘수다 떠는 직원이 훨씬 덜 위험하다’ ‘몸짓 언어의 경연장: 회의 테이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지배와 복종’ 등 흥미로운 목차를 골라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책을 읽고 나면 주변 동료와 상사들의 말투와 몸짓, 행동과 태도를 유심히 살피게 될지 모른다. 다만 회사 속 풍경을 그리면서 침팬지의 사례를 겹쳐 보여주는 것이 조금은 찜찜할 수 있다. 같은 생각을 할 독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행동은 생존의 전략이다. 우리 본성은 사실 원숭이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책은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직장생활의 일상을 해석한다. 행동생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오스트리아 도나우대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행동 연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업 현장을 찾아 강연과 컨설팅도 하고 있다. 저자는 걷는 속도와 지위의 관계도 진화론으로 풀어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채집으로 분업이 이뤄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냥에 성공해 좋은 먹이를 자랑하는 것은 성공적인 번식의 결정적인 기준이 됐다. 이를 과시하기 위해 허리를 세우고 근육을 내보이는 것뿐 아니라 성큼성큼 빠르게 걸었다. 회사 안을 오갈 때 대리가 과장에게 추월당하고 과장은 부장의 뒤통수를 보는 일이 잦아지는 이유다. 사장이나 회장 등 조직의 수장이 되면 이런 ‘신분 상징 놀이’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회장은 ‘청소부처럼 걷는 것’을 즐긴다. 자신의 지위를 굳이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속도와 시간에 대한 개념은 경제적인 측면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책은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나라별로 걷는 속도와 일을 처리하는 속도, 공공 시계의 정확성 등을 조사했더니 종합 1위는 스위스였고 꼴찌는 멕시코였다. 상위 10개 국가 중 서유럽이 아닌 곳은 일본과 홍콩뿐이었다. 책에 언급돼 있진 않지만 한국은 일은 18위, 보행 속도는 20위, 시계 정확성은 16위였다. 더운 도시에 비해 추운 곳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문화일수록 시간관념이 철저했다. 저자는 “무엇보다 삶의 속도가 빠른 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한 지표는 경제”라며 “경제가 활발한 도시가 시간이 빨리 갔다”고 서술한다.
회사 내 지위의 상징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외부에서 영입돼 회사에 처음 출근하는 임원이 있다. 그가 같은 직급의 임원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기존 세력과 새로운 권력. 두 임원 중 누구에게 더 힘이 실릴지 몰라 직원들은 눈치만 살핀다. 힘의 우위를 파악하려면 두 사람의 퇴근길을 지켜보면 된다. 회사에서 제공한 두 사람의 차량 중 누구의 차가 출입구에 더 가까운 지정석에 있는지가 답이다. 저자는 “주차 자리는 신분의 상징”이라며 “이런 상징은 다른 직원들에게 자신도 그 위치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다”고 설명한다. 업무용 차량과 휴대폰, 회사 내 자리와 책상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신분 상징을 위한 투쟁에 너무 많은 힘이 쏠려서도 안 된다. 대기업들이 어떤 직위가 되면 어떤 신분의 상징을 얻게 되는지를 정해두는 이유다.
정글 같은 회사, 종잡을 수 없는 상사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도 힌트를 준다. 클럽에서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회의에 늦은 김 대리. 이 부장은 술 냄새를 풍기며 옆에 앉은 김 대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김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의 잘못된 단어 하나를 두고 이 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부장의 고성이 층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상대가 경계를 넘었음에도 묵묵히 지켜보다가 별거 아닌 일에 길길이 날뛰며 철저히 짓밟는 것. 진화생물학에서는 이를 ‘미친개 전략’이라고 부른다. 언제 물릴지 몰라 상대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면 평소 신중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폭군과 독재자들이 활용해온 ‘잔혹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이라면서도 “남용하면 자기편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뒷담화는 생존 정보를 얻는 창구다’ ‘수다 떠는 직원이 훨씬 덜 위험하다’ ‘몸짓 언어의 경연장: 회의 테이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지배와 복종’ 등 흥미로운 목차를 골라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책을 읽고 나면 주변 동료와 상사들의 말투와 몸짓, 행동과 태도를 유심히 살피게 될지 모른다. 다만 회사 속 풍경을 그리면서 침팬지의 사례를 겹쳐 보여주는 것이 조금은 찜찜할 수 있다. 같은 생각을 할 독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행동은 생존의 전략이다. 우리 본성은 사실 원숭이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