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슬람 난민 극단세력화 막아라"…세금으로 아테네에 모스크 건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이슬람계 난민 유입이 계속되면서 유럽에서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정부가 국비로 수도 아테네에 이슬람 난민들을 위한 예배당(모스크)을 건설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급증하는 이슬람계 난민들의 극단주의 세력화를 우려한 그리스 정부의 유화책이다. 그러자 그리스 주민들은 국교 그리스 정교회와 교리가 정면 배치되는 이슬람의 사원을 정부가 돈까지 쥐여주며 짓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 예산 95만유로(약 12억원)가 소요된 아테네 모스크가 현재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올 여름 아테네 모스크를 개장할 예정이다. 아테네 모스크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하는 길목과 인접한 도시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모스크 건설은 사실상 거의 완료됐다”며 “시민들의 반대만 없으면 지금이라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모스크 건설이 처음 문제가 된 것은 2006년이다. 그리스 정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수도 중 유일하게 이슬람 사원이 없다는 비판 때문에 아테네에 모스크를 짓기로 결정했다. 아테네 이슬람교도협회 나임 엘간두르 회장은 “아테네에 제대로 된 모스크가 없다는 사실은 그리스가 우리를 동등한 시민으로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모스크 건설을 촉구했다. 그러나 국교인 그리스 정교회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수 차례 건설을 연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시리아 내전이 터져 그리스로 몰려든 이슬람계 난민이 급증하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난민들의 극단주의 세력화를 우려한 그리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10년만인 2016년에 아테네 모스크 건설 사업을 의회 표결로 확정했다. 수도 아테네에만 25만 명가량의 이슬람교도가 거주하고, 이들은 도시 곳곳의 지하 공간이나 창고를 간이 기도실로 활용하고 있어 불온한 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모스크 개장을 반대 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모스크 건설현장 앞에서 모스크의 폐쇄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최근 들어서는 아테네 시내에서 이슬람교도와 그리스인 간에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모스크 앞에는 시위대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다. 그 위에는 ‘이슬람을 저지하라’나 ‘정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에는 죽음을’과 같은 내용의 낙서들이 즐비하다.

그리스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95% 이상이 그리스 정교회를 믿고 있다.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그리스인의 76%가 정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 국민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리스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이슬람계 터키인들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통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는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제국에 멸망한 후 약 400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스인들은 당시 그리스 정신의 상징과 같은 파르테논 신전이 모스크로 개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아테네에 건설됐던 모스크 중 두 개는 오늘날까지 남아 각각 박물관과 전시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6년 아테네 모스크 건설 사업이 의회를 통과한 당시 야당인 황금새벽당의 니콜라스 미차로리아코스 대표는 “그리스는 이슬람 식민통치 시대의 역사를 잊었는가”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종교 문제가 아니더라도 매년 수십만 명씩 밀려드는 난민은 그리스의 경제에 큰 골칫거리다. 그리스는 2011년 발생했던 유로존 재정위기의 후유증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2015년 한 해에만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그리스로 넘어온 것으로 추산된다.

FT는 아테네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스크 거부 여론은 현재 유럽 전역의 이민자 반대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한다고 분석했다. EU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유로존 28개국 중 21개국 시민들은 ‘과다한 이민자 문제’를 가장 큰 사회문제로 꼽았다. EU 시민의 38%가 이민자 문제를 제1의 해결과제라고 지목했다. EU 국경관리청에 따르면 2016년 한 해에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난민은 총 181만 명에 달했다. 지금도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이제는 정확한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