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맥주사업을 접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오는 4월 맥주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인 하이트진로 임직원이 전하는 내부 분위기다. 하이트진로 고위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을 늘리지 못하면 맥주를 접고 소주에 집중하자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며 “배수진을 치고 맥주 신제품 영업에 그룹의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27일 말했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신제품 출시는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다. 업소용 병맥주부터 내놓기로 한 것도 맥주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유흥채널(일반음식점과 주점)에서 카스를 추격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스에 치이고 수입맥주에 시장 잠식당해

하이트 맥주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맥주시장을 호령했다. 1933년 국내 첫 맥주회사로 시작한 조선맥주가 ‘지하 150m, 100% 천연암반수 맥주’를 내세운 하이트를 시장에 내놨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사진)이 사장 취임 2년 만에 내놓은 첫 작품이었다. 하이트는 3년 만에 오비맥주를 꺾고 1위가 됐다. 1998년 조선맥주는 사명을 하이트로 바꿨다. 이후 10여 년간 하이트는 오비맥주의 카스와 국산 맥주시장을 양분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위기가 시작됐다. 2012년 오비맥주에 시장 1위를 내줬고, 2014년부터 영업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5년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한때 50~60%대를 유지하던 하이트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5% 안팎까지 주저앉았다.

하이트는 업소용 채널에서는 카스, 가정용 채널에서는 수입맥주의 공세에 맞서야 했다. 2~3년 전 시작된 수제맥주 열풍도 악재였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2012년 20%이던 수입맥주 점유율은 지난해 60% 이상으로 급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는 카스의 공세와 수입맥주의 급성장 사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브랜드”라며 “업소용 채널에선 최근 점유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배수의 진…“실패하면 맥주 철수 불사”

하이트진로는 6개 맥주 브랜드를 두고 있다. 하이트 외에 흑맥주 스타우트(1991년), 식이섬유맥주 S(2007년), 생맥주 시장을 겨냥한 맥스(2008년)와 드라이피니시d(2010년) 등이다. 하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에 못 미친다.

하이트진로는 고토(古土) 회복을 위해 하이트 브랜드의 리뉴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제품 출시를 선택했다.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주력 제품인 하이트의 부활을 위해 수차례 품질 개선과 디자인 리뉴얼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위기가 본격화된 2014년에는 독일 컨설팅업체와 공동으로 뉴 하이트를 출시하기도 했다. 2016년엔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를 내놓으며 맥주 원료인 홉의 비중을 높이고, 공법과 상표 등 전 부문에 걸쳐 업그레이드했다. 알코올 도수를 기존 4.3%에서 4.5%로 올려보기도 했다.

소비자 반응은 싸늘했다. 기존 브랜드로는 한 번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기 쉽지 않았다. ‘카스의 벽’은 그만큼 높았다. 여기에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도 하이트진로의 실적에 악재로 작용했다.

하이트진로와 달리 오비맥주는 카스 외에도 버드와이저 스텔라 호가든 코로나 레페 등의 다양한 수입맥주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대외 환경 변화의 영향을 덜 받았다.

업계 “하이트가 마지막 카드 꺼냈다” 평가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맥주를 500mL 병 제품부터 내놓기로 한 이유는 무너진 업소용 맥주 시장에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다. 2017년 출시한 발포주 필라이트의 성공에서 새로운 브랜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필라이트의 성공으로 하이트진로는 가정용 시장에서 실적을 일부 회복했다. 맥주는 출고원가의 72%에 대해 주세가 붙지만, 발포주는 ‘기타 주류’로 분류돼 주세가 출고원가의 30%에만 적용된다. ‘12캔에 1만원’ 전략을 앞세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젊은 층을 파고들었다.

필라이트는 출시 1년6개월 만에 4억 캔(355mL 기준) 이상 판매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가정용 시장에서 필라이트가 선방하는 등 신제품 효과가 나면서 하이트맥주 역시 브랜드 리뉴얼 대신 신제품 출시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선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개발과 영업·마케팅에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카스를 추격할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