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1923년 1월12일. 종로경찰서에 난데없이 날아온 폭탄이 터졌다. 이로 인해 7명이 다치거나 사망했고 건물 일부가 파괴됐다. 일본 경찰은 의열단원 김상옥이 폭탄을 투척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즉각 검거에 나섰다. 현장에서 벗어난 김상옥은 친척과 동지의 집을 전전했지만 열흘 뒤 끈질기게 추격해온 경찰 수백 명의 포위망에 갇혔다. 홀로 맞선 그는 치열한 총격전 끝에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했다. 일본 경찰 10여 명을 살상한 뒤였다. 일제강점기 의열 투쟁 중 가장 대표적인 항일 시가전이었다.

김상옥은 1890년 한성부 군관 김귀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철물점을 운영하며 얻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3·1운동 직후 항일운동에 본격 투신했다. 1919년 4월 비밀결사단체 혁신단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이듬해 8월 일본 총독 암살계획이 사전에 발각돼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김구 이시영 신익희 조소앙 등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은 직접 관공서에 타격을 주거나 식민 치하에서 요직을 맡은 인물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항일 투쟁을 했다. 1922년 김상옥은 권총과 폭탄을 들고 서울로 잠입했다. 목표물은 일본 경찰의 심장부이자 독립운동가 탄압과 검거의 상징인 종로경찰서였다. 당시 중학생으로 시가전을 목격했던 화가 구본웅은 훗날 김상옥 최후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정부는 1962년 김상옥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