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업 상황은 '냄비 속 개구리'
CEO들 "올해는 더 어려울 것" 탄식
그래도 새로운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더욱 암울하다. 기업의 활동 반경을 좁히는 규제가 수두룩하다. 작년 국회에 쏟아진 기업 관련 법안 1500여 개 가운데 규제 법안만 833개에 달했다. 법인세 인상에 이은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 추진 등의 ‘규제 폭탄’이 기업들을 짓누르고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강행 등도 큰 걱정거리다. 반면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강성 노조의 기세는 드세다. 잇따른 친노동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금의 기업 상황을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개구리가 화상을 입기 일보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경영 환경이 그만큼 어렵다.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선 ‘기업하기 정말 힘들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넋을 잃고 허둥대면 바로 도태된다. 기업들이 어느 해보다 혹독한 변화와 혁신을 준비하는 이유다.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모바일 기기, 소비자 가전 등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위기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는 ‘초격차 전략’을 통해 시장 우위를 지켜 나간다. 시스템LSI 부문에선 5세대(5G) 이동통신 모뎀을 활용해 중국과 미국 거래처 다각화에 집중한다. 내장형 지문 인식 센서 등 신제품도 선보여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스마트폰 부문에선 프리미엄 시장과 중저가 시장을 동시에 잡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쓰기로 했다. 프리미엄 시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핵심 부품 혁신을 통한 디자인 차별화와 라인업 다각화로 승부한다. 중저가 시장에선 카메라 등에서 차별화된 기능을 채택해 중국 업체의 도전을 뿌리칠 계획이다. TV 부문은 초대형 제품과 초고화질 제품 판매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 확대, 판매 최우선 지원 체제 구축 등을 통해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화두로는 ‘수익성 확보’를 정했다. 무리한 판매 계획을 세우고 물량을 밀어내기보다는 내실 있는 생산·판매를 통해 수익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취지다.
LG그룹도 전자, 화학, 통신 등 주력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확대한다. 전자 부문에서는 올레드 TV, 프리미엄 가전 등 고부가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수익성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독자 인공지능(AI) 플랫폼인 ‘딥씽큐’를 탑재한 올레드 TV를 확대한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시장 주도권 강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약 16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 LG화학은 올해 기초소재 및 전지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하는 데 집중한다.
대한항공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선 확대와 차세대 항공기 도입에 나선다. 올해 차세대 항공기 보잉 737MAX-8과 에어버스 321NEO가 핵심이다. 이 항공기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새로운 가치 창출 통한 도약
SK그룹은 기존 산업에 안주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각오로 경영 전반을 대대적으로 쇄신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소재, 에너지 신산업, 헬스케어,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미래 모빌리티 등을 5대 중점 육성 분야로 선정했다. 3년간 80조원을 투자한다. 반도체 핵심 소재는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 자급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에너지 신산업은 액화천연가스(LNG), 태양광 등 친환경신재생 발전 분야에 투자를 확대한다.
포스코는 2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사업 부문 위상을 철강 부문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상했다. 2차전지 분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음극재 기업인 포스코켐텍과 양극재 업체인 포스코ESM의 합병도 추진한다. 2차전지 소재 종합연구센터도 설립한다.
두산그룹은 ‘디지털 혁신’을 화두로 잡았다.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일까지 디지털 전환을 통한 혁신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전통 제조업인 발전소 플랜트와 건설기계 등에 ICT를 접목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전사적인 디지털 전환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룹 내에 최고디지털혁신(CDO) 조직도 신설했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그룹 전반에 디지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