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 확대를 둘러싼 산업계와 의료계 간 대결 구도가 산업계와 정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의료계의 눈치를 보는 정부가 대폭적인 항목 확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산업계가 시범사업 보이콧을 선언하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 확대 진통…바이오업계·정부 갈등으로 비화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에 따라 DTC에 추가할 항목을 결정하기 전 유전자검사 업체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20일 DTC업체 모임인 한국바이오협회 산하 유전체기업협의회는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시범사업에 불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시범사업 절차 때문에 항목 확대가 적어도 1년 이상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며 “정부가 대폭적인 항목 확대에서 한 발 물러선 것도 불만”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정선용 아주대 의대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맡겨 DTC 항목을 121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의료계가 반발하자 50여 개로 방침을 바꿨다. 게다가 인증제 심사기관도 의사 등이 심사위원으로 주로 참여한 유전자검사평가원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는 가뜩이나 DTC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들에게 인증제 심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복지부는 어떤 항목을 추가할지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시범사업을 할 때 알려주겠다고 한다”며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 7월 허용된 DTC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민간 업체에 직접 검사를 의뢰하는 서비스다. 현재 체질량지수, 콜레스테롤, 혈당, 탈모, 피부 노화 등 12가지 항목만 허용돼 있다. 일본 중국 등에 비해 허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산업계는 줄곧 검사 범위 확대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의료계는 국민이 유전자검사를 과신해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을 오남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유전체기업협의회가 강력 반발하자 복지부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다음달 초 유전체기업협의회와 간담회를 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산업계, 의료계, 학계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DTC 항목 추가 대상을 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는 아직 못 믿겠다는 눈치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2년 넘게 논의돼온 DTC 규제완화가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