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외주화] ② 재계 반발에 2년 잠잔 '위험 떠넘기기 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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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개정 목적은 제재 아닌 독려…원청이 안전관리 책임 100% 져야"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7개 법안이 패키지로 발의됐다.
약 2년이 흐른 지금, 7개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아직 한 건도 없다.
그 사이 재계는 꾸준히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를 반대해왔다.
재계의 조직적 활동으로 국회에서 2년간 잠자고 있던 외주화 방지법은 결국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여야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여전히 쟁점을 놓고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 2년간 표류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재계 반발 영향
2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2016년 5월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19세 노동자가 숨진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7개 법안을 패키지로 국회에 제출했다.
유해성과 위험성이 높은 제조, 취급, 안전관리 업무를 하도급 줌으로써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법안에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패키지 안은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2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철도안전법' 개정안으로 구성됐다. 국민의 당(당시 명칭)과 정의당도 사업주의 안건보건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각각 발의하며 사고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난 2월 9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 관련 논의를 한데 모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작업 현장에서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원청업체 사업주도 하도급업체 사업주와 마찬가지로 1년 이상∼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도금과 수은·납·카드뮴·황화 니켈·염화비닐·크롬산 아연·비소 등 유해·위험성이 높은 12개 물질의 제조·사용작업은 도급이 전면 금지된다.
유해·위험 화학물질의 제조 설비를 개조·해체하려면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도급이 가능하고 위반 시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3월 "경미한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따른 사망사고까지 하한의 징역형을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고용부에 전달했다.
그다음 달에는 '산업안전보건정책 개선 토론회'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내용이 모호하고 규제 규정이 과도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논란 속에 개정안은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에 대한 처벌 하한선이 빠지고 위험작업 예외조항이 신설됐다.
법이 국회로 넘어오자 경총은 지난달 26일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바람직한 상법 개정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간담회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공정거래법 등의 법안 개정이 한꺼번에 추진돼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산업안전보건법 등 8개 법안에 대한 종합 의견서를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 제출했다.
경총은 "중대 재해 발생 시 이뤄지는 작업중지 명령을 최소 필요범위로 한정하고, 도급인 책임 범위를 생산 관련 도급업무 및 산재 발생 위험장소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산하 연구기관을 활용해 재계의 입장을 뒷받침할 연구나 설문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입안 과정에 참여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외주를 늘린 가장 큰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라며 "하지만 외주는 전문가에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 맡기는 게 원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회 10개월 만에 개정 합의…'사각지대' 남아
여야는 지난 21일 임시국회 회기 내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입법예고를 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뒤늦게나마 개정안 처리에 희망이 나타난 것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 협력업체 직원 김용균 씨의 사망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3시 20분께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구의역 사고 발생 2년 만에 하청업체 직원의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뒤늦게 정치권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1일 공청회를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규정한 보호 대상 확대와 작업중지권 확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제한과 원청업체의 책임 강화 등을 논의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김씨의 빈소를 조문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차질없이 통과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정안의 연내 처리 합의에도 각 상임위 논의 단계에서부터 여야 간 첨예한 대립으로 난항을 겪으며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여기에 처리를 앞두고 있는 개정안은 재계의 반발 의견이 반영돼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김용균씨가 맡던 직무에 대해선 여전히 하도급이 가능하다는 맹점도 안고 있다.
개정안은 납이나 수은 등 유해한 중금속을 사용하는 업무의 경우에만 하도급을 금지했는데 이 경우 김씨와 같은 수리·정비 근로자는 여전히 하도급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개정안에서 규정한 업무뿐만 아니라 사망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한 업무는 하도급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일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기업의 안전 관리가) 다소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원칙적으로 책임은 원청이 100% 져야 하고, 혹시 외주를 준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원청이 지는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공기업의 안전경영에 대한 평가 비중이 현재는 전체의 3%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를 30% 이상으로 확대해 기업의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한 제재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산업안전 관련 예방 조치를 충실히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며 "예방체계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