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질환 부르는 수면습관
국민 50만 명이 수면장애
잠잘 때 숨 쉬지 않으면 체내 산소 포화도 떨어져
수면무호흡증 지속 땐 뇌 변화
7~8시간 자야 꿀잠
9시간 넘으면 뇌경색 위험 50%↑
잠 부족하면 식욕만 자극
불규칙한 수면량, 사망률 높여
본인은 잘 모르는 수면무호흡증
잠자다 자주 깨고 코 골면 의심을
수면다원검사로 정밀 분석해야
수면장애와 수면무호흡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수면장애로 국내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013년 38만 명에서 지난해 51만500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국민 1% 정도가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아 치료받았다는 의미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도 같은 기간 2만7000명에서 3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환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장애, 무호흡증을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아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에 직접 영향을 주는 수면질환이다. 잠을 자면서 10초 넘게 숨을 쉬지 않거나 덜 쉬는 일이 시간당 다섯 번 이상 반복되면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한다. 목이 굵거나 턱이 작고 편도선이 커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많이 호소한다. 여성보다 남성 환자가 많고 고령일수록, 술 담배를 많이 할수록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호소할 위험이 높다. 당뇨, 비만도 위험인자다. 뇌졸중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고혈압이 있는 환자 50%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혈압 약을 세 가지 넘게 복용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 환자의 83% 정도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호소한다.
잠을 자면서 숨을 쉬지 않으면 체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진다. 산소가 부족해진 뇌는 인체를 각성시킨다. 다시 숨을 쉬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때 몸속 교감신경이 흥분상태가 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 이 때문에 밤 시간 혈압과 혈당이 오르고 부정맥 발생 위험도 커진다. 잠을 자면서 숨을 쉬지 않으면 뇌혈관이 수축한다.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 혈관 탄력과 지혈 기능에 영향을 주는 내피세포 기능이 떨어진다. 잠을 오래 자도 개운하지 않고 낮에 졸음이 밀려와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 조성래 유성선병원 뇌졸중센터 신경과장은 “시간당 15회 이상 10초 넘게 숨을 쉬지 않거나 덜 쉬는 비교적 심한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뇌조직이 변한다”며 “뇌경색 때문에 혈관성 치매가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고 했다.
수면시간 길거나 짧아도 뇌경색 위험
갑자기 뇌혈관이 막히는 급성 뇌경색 환자와 혈관이 막혀 뇌에 갑자기 혈액이 부족해지는 일과성 뇌허혈증 환자의 50~70%는 수면무호흡증을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시간 동안 수면무호흡과 저호흡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측정하는 지표를 AHI(무호흡 저호흡 지수)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11 이상이면 뇌경색 위험이 1.5배 올라간다. 20 이상이면 네 배 넘게 뇌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뇌졸중 후 재활치료 효과도 떨어진다. 약을 먹더라도 재발 위험이 크다.
수면시간 역시 뇌경색 발생에 영향을 준다. 사람마다 적정 수면 시간이 다르지만 한국인은 대개 하루 7~8시간 정도가 적정하다. 오랫동안 잠을 5시간 미만 자면 뇌경색 발병 위험이 44% 높아진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고혈압, 당뇨가 생길 위험이 높아지고 지방대사도 바뀌어 비만, 고지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이 부족해지면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활동은 줄고 음식은 많이 찾게 돼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9시간 넘게 잠을 자면 뇌경색 위험이 50% 정도 올라간다. 뇌 조직이 바뀌고 경동맥 동맥경화, 부정맥 등이 생겨 뇌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조 과장은 “수면량과 수면 시간대가 불규칙한 사람은 비만, 고혈압, 당뇨, 심혈관질환 위험과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들 직종에 있는 사람은 뇌졸중 위험인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자꾸 뒤척이면 무호흡증 의심
수면무호흡증은 어른들에게만 생기는 질환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수면무호흡증이 생길 수 있다. 지난해 수면무호흡증 환자 중 5% 정도가 소아청소년 환자였다. 성인들은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심한 코골이 증상을 호소하지만 아이들은 코를 골지 않는 환자가 많다. 만약 아이가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리거나 잠을 잘 때 자주 심하게 뒤척인다면 수면무호흡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깊은 잠을 잘 때 성장호르몬이 나온다. 수면무호흡증 때문에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성장·학습장애가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은 대개 편도와 아데노이드가 커져 기도가 좁아지면서 수면무호흡증을 호소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피곤이 누적돼 짜증이 늘어난다. 수면무호흡증으로 과잉행동, 주의력 결핍, 공격성 등을 보이는 행동장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이건희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소아 수면무호흡증은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해야 한다”며 “아이의 수면 양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 수면무호흡증이 의심되면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했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낮에 자꾸 졸리고 잠을 자다가 자주 깨거나 코를 고는 것은 수면무호흡증 의심 증상이다. 이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숨 쉬는 구멍이 많이 막혀 있거나 비만 고혈압 등의 환자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70만원 정도인 검사 비용의 20%만 내면 된다. 환자부담은 11만~15만원 정도다. 센서 등을 달고 8시간 넘게 잠을 자면서 코 고는 횟수, 호흡곤란지수,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한다. 이를 통해 수면무호흡증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원인에 맞는 치료를 한다. 수술로 숨구멍을 넓혀주는 치료를 많이 한다.
bluesky@hankyung.com
도움말=조성래 유성선병원 뇌졸중센터 신경과장, 이건희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