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 주요 생명보험사들의 지급여력(RBC)비율이 정체기를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동안 보험사들은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에 앞서 RBC비율 높이기에 나서왔지만 최근 금리상승 기조에 따른 채권평가손실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7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NH농협생명·미래에셋생명 등 주요 5개 생보사의 올 3분기 RBC비율은 249.81%로 전년 동기 대비 1.52% 오르는데 그쳤다.보험사별로 살펴보면 삼성생명의 RBC비율이 316.60%로 가장 높았으나 전년 동기 대비 13.35%포인트 떨어졌고 미래에셋생명(212.16%)과 NH농협생명(206.70%)은 각각 8.48%포인트, 11.61%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교보생명의 RBC비율은 291.99%로 전년 동기 대비 36.36%포인트 올랐고 한화생명은 4.70%포인트 상승한 221.60%를 기록했다.RBC비율은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했을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으로 보험회사의 자본건정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RBC비율이 100%면 모든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일시에 지급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에게 RBC비율 150%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과 금리 인상에 대비해 후순위채권 또는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강도 높은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2022년 IFRS17 도입 시 보험부채의 평가기준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어 가용자본 감소가 예상돼 보험사의 RBC비율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한화생명은 올해 4월에 신종자본증권 1조700억원을 발행했고 신한생명은 최대 2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채권값 하락에 따른 손실 발생으로 자본이 감소하면서 생보사의 RBC비율은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금리 상승에 따른 금리위험 증가와 상품자산의 시세나 가치가 미래에 불리하게 변동함으로써 입게 될 위험을 계량화 한 시장위험 증가가 RBC비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연 1.50%에서 연 1.75%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시중금리는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보험사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전망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준비 중이며 교보생명은 최대 10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했으나 금리 상승 여파로 잠정 보류하고 시장 상황을 고려해 재개할 계획이다.업계 한 관계자는 "IFRS17 도입이 2022년으로 1년 연기됐음에도 불구하고 RBC비율 관리를 위한 자본확충은 계속 필요하다"며 "향후 RBC비율 취약이 예상되는 일부 보험사는 자본확충 및 위기상황분석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생명보험 외길 인생을 걸으며 ‘보험의 선구자’로 불려온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1917~2003)의 삶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참사람 육성’이다. 이력서의 최종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라고 썼던 대산에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까지 겪는 치열한 삶 속에서 그가 키운 것은 ‘국민 교육’에 대한 열정이었다.항일 운동가 집안, 애국지사들과 교류대산은 1917년 전남 영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병약해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다. 대신 책으로 배움에 대한 열망을 채웠다.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줬다. 책을 읽을수록 사회와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됐고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생각의 크기를 넓혀갔다.스무 살이 되던 해 대산은 큰 꿈을 품고 만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국 다롄, 베이징 등지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이육사 등 애국지사와 교류하며 민족기업가로 활약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을 키워내고 민족자본을 형성해 경제 자립의 기반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다.세계 최초 교육보험 창안해방 후 귀국한 대산은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라는 믿음으로 교육보험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연구 끝에 생명보험의 원리와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 제도를 창안하고 교육보험회사 설립을 추진했다.만주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창립이념은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으로 정했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자립경제의 바탕이 될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사명도 생명보험이 아니라 대한교육보험으로 결정했다. 당국이 새로운 보험회사 설립을 꺼리자 대산은 당시 김현철 재무부 장관 집 앞에서 반년을 기다리며 설득했다. 1958년 8월7일 서울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의 역사가 시작됐다. 창립과 함께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교육보험을 출시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다.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상품 출시 이후 30년간 약 300만 명의 학생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인재들이 1960년 이후 한국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국내 보험산업 이끌어“오늘 이 개업식이 초라하다고 서글퍼하지 맙시다. 선진국에서도 보험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 보통 50년이 걸립니다. 본인은 그 절반인 25년 이내에 우리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대산이 한 말이다. 교육보험의 인기에 힘입어 회사는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로도 보험업계 ‘최초’의 기록을 이어갔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을 선도했다.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으로 본격적인 보장성보험 시대의 막을 열었다. 서울 종로1가에 광화문의 랜드마크 교보빌딩을 세운 것은 1980년이다. ‘서울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업계 최초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 100% 적립, 계약자 이익배당 등을 하면서 한국 보험산업의 견인차 역할도 했다. 한국 보험산업을 세계 8위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세계적으로도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1996년에는 ‘세계 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1997년 세계보험협회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신용호세계보험학술대상’을 제정했다. 한국인 이름으로 세계 보험학자에게 수여하는 유일한 상이다.국민교육의 다른 한 축, 교보문고‘국민교육’을 실행한 대산의 다른 한 축은 지식문화기업인 교보문고다. 어린 시절 학교를 못 가면서도 독서에 열심이던 대산이기에 책의 힘을 잘 알았다. 그에게 책은 스승이자 인생의 나침반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산의 신념은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의 설립으로 연결됐다.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지하 1층, 금싸라기 땅에 돈도 안 되는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임직원은 일제히 반대했다. 이에 대산은 말했다. “사통팔달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 대학교수, 사업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교보문고는 1981년 6월 문을 열었다. 서가 길이가 무려 24.7㎞에 달한 교보문고는 개장과 동시에 명소가 됐다. 개점 후에도 대산은 틈만 나면 교보문고를 돌아봤다. 교보문고는 현재 전국 3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종이책 유통 1위 회사를 뛰어넘어 온라인과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포괄한 지식문화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산의 바람대로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지식과 문화의 광장이자 평생교육의 장이 된 것이다.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