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김혜수가 밝힌 유아인, 그리고 뱅상 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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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배우라고 다 같은 배우인가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 역 김혜수
영화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 역 김혜수
김혜수는 솔직했다. 연기, 작품, 그리고 평소 팬이라는 배우 뱅상 카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했다. 똑 부러지는 말투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한시현과 똑 닮았지만, 데뷔 후 32년째 정상에서 활동하는 노련한 여배우의 유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기 받기 직전 대한민국의 상황을 조명한 최초의 영화다. 국가부도 위기를 포착하고 이를 막으려는 사람과 이용하려는 사람,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IMF의 의미와 인간들의 욕망에 대해 전했다.
김혜수는 국가부도 상황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시현 역할을 맡았다. 지금껏 영화계에서 위기를 해결하는 똑똑한 주인공 역할은 대부분 남성이 연기했다. 함께 연기했던 유아인마저 "여성이 이렇게 극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 신선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김혜수는 "남성과 여성으로 성별을 나눈 투사가 아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연기했다"며 "이 역할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몰입감을 보고 처음 작품에 끌렸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 21년 전 그날, IMF
김혜수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은 후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말로 감상평을 전했다. IMF를 경험했고, 주변에서 IMF 때문에 상처입고 상황이 비참하게 달라졌던 친구들도 지켜봤던 김혜수였지만 "저는 그땐 잘 몰랐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영화 속 협상 내막이 100% 사실이라 할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부분들은 많잖아요. 한보 사태를 시작으로 대우, 미도파, 뉴코아 등 알만한 회사들이 부도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국민들이 흥청망청 쓰고, 해외 여행을 다녀서 그런 거라고 했죠. 그게 아닌데, 읽다 보니 그런 분노가 올라오더라고요. 뭔가 직격탄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오히려 많은 사람이 주목했던 여자 주인공, 한시현의 역할에 대해선 "솔직히 재미없지 않냐"고 평하면서 웃었다. 원칙과 정의, 소신과 언행일치 등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한시현을 "뻔하고 교과서적인 캐릭터"라고 여긴 것.
그럼에도 한시현을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한 포인트는 "패턴화되지 않은 작은 차이"였다.
"한시현이란 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만 놓고 본다면 저는 당연히 출연하지 않았을 거에요. 너무 도식화된 주인공 같잖아요. 끝까지 바른말만 할 거 같고.(웃음)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주의 구조에서 신념과 원칙을 동력으로 움직이지만, 그 조직에서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런 것들이 쌓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는 거죠. 고위 관료들과도 싸우고, IMF 수장과도 맞서니까요. 이걸 단순히 여성이라서 특별하다고 어필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성인이 아닐까 싶어요." ◆ "뱅상 카셀, 원래 좋아했는데 더 좋아"
입에 붙지 않는 경제 용어가 극 곳곳에서 등장하고, 극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IMF 협상 장면은 온전히 영어로만 진행된다. 김혜수는 이 모든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상대방의 대사까지 모두 읊을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했다. 영어 대사만 매일 1시간30분 이상씩 따로 준비했다.
여기에 IMF 총재 역할로 뱅상 카셀이 발탁됐다는 소식에 "처음엔 '만난다'는 생각에 들떴고, 촬영에 임박해선 '한국의 영화 현장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했다.
극 안에선 팽팽한 대립 구도를 선보이지만 김혜수는 뱅상 카셀을 말할 때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너무 매력적이지 않냐"면서 '성덕'(성공한 덕후, 팬)의 모습을 보여 폭소케 했다. "외모 때문에 처음엔 좋아했는데, 작품을 보니 연기는 더 끝내준다"면서 뱅상 카셀 예찬론을 펼쳤다.
"중요한 역할이라 시나리오를 직접 보냈는데, 이야기만 보고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너무 멋지지 않나요?(웃음) 감명받았어요. 배우는 다 배우라고 하지만, 어떻게 배우가 다 배우인가요. 뱅상 카셀인데. 농담으로 '회담장에서 티격태격하다가 따로 만나는 걸로 바꾸면 안되나' 이런 말도 했죠. 연기는 강렬한데 평소엔 부드러운 매너가 있었어요. 저에겐 뱅상 카셀과 함께 촬영한 3일은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어요."
◆ 고마운 유아인, 놀라웠던 조우진
뱅상 카셀에 대해선 '팬심'을 전하던 김혜수가 조우진에 대해 말할 땐 돌연 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넘치는 애정도 숨기지 않고 고백했다.
조우진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시현의 주장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재경국 차장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선 스파크가 튈 정도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다. 그렇지만 작품 밖에선 달랐다. 제작보고회, 기자간담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우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혜수는 이번에도 "(연기할 땐) 미친 것 같다"며 "경외심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 드라마 작품을 정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안 겹치고, 다 잘해요. 심지어 차기작인 '마약왕'에서는 저렇게 마른 몸에 8kg을 뺐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또 언제 뺐데. 저런 배우는 정말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분들에게 경외심이 있는데, 조우진 배우는 명석한 두뇌가 있고, 천재적인데 노력까지 하니 이길 수가 없어요."
극중 한 번도 마주치는 장면이 없었던 유아인에게도 "이 작품을 통해 유아인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된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국가부도의 날' 준비 과정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 역할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는데, 선뜻 출연을 결정한 것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낸 것.
"모두 아시겠지만, 한시현이 먼저 캐스팅되고, 정학이 그다음이었어요. 순서가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캐스팅할 때 배우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유아인 씨는 남자주인공으로 폼나고, 칭찬받을 수 있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을 텐데 그 어려운 '버닝'이라는 작품을 끝내고 우리 작품을 택해 줬어요. 연기와 별개로 유아인이란 배우를 다시 보게됐어요."
이어 함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원으로 연기한 동료 배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한시현이 한시현으로 빛을 낼 수 있었다면, 그건 함께 있었던 팀원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해요. 극 중 한시현이 출격 준비를 하는 것처럼 팀원들이 옷과 구두를 챙겨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의 호흡과 팀워크가 정말 좋았어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한시현과 팀원들이었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기 받기 직전 대한민국의 상황을 조명한 최초의 영화다. 국가부도 위기를 포착하고 이를 막으려는 사람과 이용하려는 사람,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IMF의 의미와 인간들의 욕망에 대해 전했다.
김혜수는 국가부도 상황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시현 역할을 맡았다. 지금껏 영화계에서 위기를 해결하는 똑똑한 주인공 역할은 대부분 남성이 연기했다. 함께 연기했던 유아인마저 "여성이 이렇게 극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 신선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김혜수는 "남성과 여성으로 성별을 나눈 투사가 아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연기했다"며 "이 역할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몰입감을 보고 처음 작품에 끌렸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 21년 전 그날, IMF
김혜수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은 후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말로 감상평을 전했다. IMF를 경험했고, 주변에서 IMF 때문에 상처입고 상황이 비참하게 달라졌던 친구들도 지켜봤던 김혜수였지만 "저는 그땐 잘 몰랐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영화 속 협상 내막이 100% 사실이라 할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부분들은 많잖아요. 한보 사태를 시작으로 대우, 미도파, 뉴코아 등 알만한 회사들이 부도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국민들이 흥청망청 쓰고, 해외 여행을 다녀서 그런 거라고 했죠. 그게 아닌데, 읽다 보니 그런 분노가 올라오더라고요. 뭔가 직격탄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오히려 많은 사람이 주목했던 여자 주인공, 한시현의 역할에 대해선 "솔직히 재미없지 않냐"고 평하면서 웃었다. 원칙과 정의, 소신과 언행일치 등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한시현을 "뻔하고 교과서적인 캐릭터"라고 여긴 것.
그럼에도 한시현을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한 포인트는 "패턴화되지 않은 작은 차이"였다.
"한시현이란 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만 놓고 본다면 저는 당연히 출연하지 않았을 거에요. 너무 도식화된 주인공 같잖아요. 끝까지 바른말만 할 거 같고.(웃음)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주의 구조에서 신념과 원칙을 동력으로 움직이지만, 그 조직에서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런 것들이 쌓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는 거죠. 고위 관료들과도 싸우고, IMF 수장과도 맞서니까요. 이걸 단순히 여성이라서 특별하다고 어필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성인이 아닐까 싶어요." ◆ "뱅상 카셀, 원래 좋아했는데 더 좋아"
입에 붙지 않는 경제 용어가 극 곳곳에서 등장하고, 극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IMF 협상 장면은 온전히 영어로만 진행된다. 김혜수는 이 모든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상대방의 대사까지 모두 읊을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했다. 영어 대사만 매일 1시간30분 이상씩 따로 준비했다.
여기에 IMF 총재 역할로 뱅상 카셀이 발탁됐다는 소식에 "처음엔 '만난다'는 생각에 들떴고, 촬영에 임박해선 '한국의 영화 현장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했다.
극 안에선 팽팽한 대립 구도를 선보이지만 김혜수는 뱅상 카셀을 말할 때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너무 매력적이지 않냐"면서 '성덕'(성공한 덕후, 팬)의 모습을 보여 폭소케 했다. "외모 때문에 처음엔 좋아했는데, 작품을 보니 연기는 더 끝내준다"면서 뱅상 카셀 예찬론을 펼쳤다.
"중요한 역할이라 시나리오를 직접 보냈는데, 이야기만 보고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너무 멋지지 않나요?(웃음) 감명받았어요. 배우는 다 배우라고 하지만, 어떻게 배우가 다 배우인가요. 뱅상 카셀인데. 농담으로 '회담장에서 티격태격하다가 따로 만나는 걸로 바꾸면 안되나' 이런 말도 했죠. 연기는 강렬한데 평소엔 부드러운 매너가 있었어요. 저에겐 뱅상 카셀과 함께 촬영한 3일은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어요."
◆ 고마운 유아인, 놀라웠던 조우진
뱅상 카셀에 대해선 '팬심'을 전하던 김혜수가 조우진에 대해 말할 땐 돌연 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넘치는 애정도 숨기지 않고 고백했다.
조우진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시현의 주장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재경국 차장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선 스파크가 튈 정도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다. 그렇지만 작품 밖에선 달랐다. 제작보고회, 기자간담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우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혜수는 이번에도 "(연기할 땐) 미친 것 같다"며 "경외심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 드라마 작품을 정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안 겹치고, 다 잘해요. 심지어 차기작인 '마약왕'에서는 저렇게 마른 몸에 8kg을 뺐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또 언제 뺐데. 저런 배우는 정말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분들에게 경외심이 있는데, 조우진 배우는 명석한 두뇌가 있고, 천재적인데 노력까지 하니 이길 수가 없어요."
극중 한 번도 마주치는 장면이 없었던 유아인에게도 "이 작품을 통해 유아인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된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국가부도의 날' 준비 과정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 역할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는데, 선뜻 출연을 결정한 것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낸 것.
"모두 아시겠지만, 한시현이 먼저 캐스팅되고, 정학이 그다음이었어요. 순서가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캐스팅할 때 배우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유아인 씨는 남자주인공으로 폼나고, 칭찬받을 수 있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을 텐데 그 어려운 '버닝'이라는 작품을 끝내고 우리 작품을 택해 줬어요. 연기와 별개로 유아인이란 배우를 다시 보게됐어요."
이어 함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원으로 연기한 동료 배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한시현이 한시현으로 빛을 낼 수 있었다면, 그건 함께 있었던 팀원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해요. 극 중 한시현이 출격 준비를 하는 것처럼 팀원들이 옷과 구두를 챙겨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의 호흡과 팀워크가 정말 좋았어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한시현과 팀원들이었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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