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개악(改惡)’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안에 자동차 리콜(결함 시정) 과정에서 결함 여부를 판단할 정부의 책임을 제조사(자동차회사)에 떠넘기는 내용이 담기면서다. 원인 파악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마구잡이식 리콜’이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박순자 의원(자유한국당)은 최근 자동차 리콜 방안을 바꾸는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 입법이지만 국토교통부 의견을 받아들여 함께 마련한 법안이다.

자동차관리법 '개정' 논란…車업계 부글부글
핵심은 ‘자동차회사가 해당 모델의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제31조 8항)’고 의무화한 것이다. ‘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엔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제31조 9항)’는 규정까지 들어 있다. 결함 원인을 파악하고 리콜하는 과정에서 자동차회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 결함 여부에 대한 판단과 리콜 실시 결정은 국토부가 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BMW 화재 사태로 리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엉뚱하게 책임을 자동차회사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완성차업체들이 결함 원인을 제대로 따지지도 못한 채 리콜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완성차업체 임원은 “예컨대 엔진 이상으로 추정되는 문제가 제기될 경우 제조사가 ‘무(無)결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원인을 몰라도 바로 리콜에 들어가야 한다”며 “나중에 운전자 부주의에 따른 문제로 밝혀질 경우 투입된 예산과 인력은 누가 보상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해외로까지 ‘리콜 대란’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자동차회사가 해외에서 리콜을 진행할 때 자국에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무리하게 리콜이 강행되면 곧바로 해외에서도 리콜 또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통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리콜 요건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경우 자동차회사가 자발적으로 리콜한다’는 모호한 규정 탓에 자동차회사와 소비자, 정부 부처 간 이견이 크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교수는 “정부가 리콜 요건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미국처럼 제작사와 정부가 논란 초기부터 정보를 공유하면서 리콜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