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 총알 비웃던 어른들도 스릴감…"軍시절 본능 살아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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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취미백서
나만 취미없어? 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3) 너프건
'너프건'으로 겨루는 서바이벌…스펀지 총알 사정거리 20m
보안경 쓰고, 소총 손에 쥐고 어느새 서바이벌 재미에 빠져
조카 사주려다 '마니아' 된다…플라스틱 총알 'BB탄'보다 안전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최고…3D프린터로 직접 제작하기도
나만 취미없어? 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3) 너프건
'너프건'으로 겨루는 서바이벌…스펀지 총알 사정거리 20m
보안경 쓰고, 소총 손에 쥐고 어느새 서바이벌 재미에 빠져
조카 사주려다 '마니아' 된다…플라스틱 총알 'BB탄'보다 안전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최고…3D프린터로 직접 제작하기도
“준비, 시~작!”
‘전쟁’이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돌격부대는 생각이 많지 않은 초등학생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은 채 적을 향해 돌진했다. 드럼통 모양 엄폐물까지의 거리는 약 5m. 하지만 그곳에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나서기 무섭게 ‘스펀지 총알’이 쏟아졌다. 온몸에 총알을 맞고 전사한 어린이들은 비명 대신 “에이 맞았네”라고 툴툴거리며 경기장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적들이 탄창을 새로 갈아 끼우는 순간. 기자를 포함한 어른들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엄폐물 뒤에서 둔중한 덩치를 수줍게 숨기고 있던 어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적진을 향해 뛰쳐나갔다. 상대편에서 ‘웅웅’ 하는 모터 소리가 들리며 스펀지 총알이 빗발쳤다. 총알 비를 피해 엄폐물로 몸을 숨긴 뒤 돌진해오는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현역 시절 명사수의 본능이 살아났다. 탄창을 갈아 끼우려는 찰나 다리에 뭔가 느낌이 왔다. 윽, 총에 맞았다. 측면 기습에 당했다. “으악, 저 사망요. 전사 전사.” 다소곳이 총을 들고 경기장 밖으로 나갈 차례였다.
안전하게 즐기는 총싸움의 매력
지난 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는 11월 정기 ‘너프워’가 열렸다. 서울 지역 너프건 애호가의 모임인 네이버 카페 ‘말랑팡스’가 주최한 행사였다. 너프워는 장난감 총 너프건을 들고 서바이벌 등 총싸움을 하는 놀이다. 너프건은 미국 완구업체 해즈브로가 내놓은 안전한 장난감 총이다. 최대 20m 정도 날아가는 스펀지 총알을 사용한다. 아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안경만 쓰면 얼마든지 다칠 걱정 없이 놀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나 갖고 놀 만한 장난감으로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손바닥만 한 권총부터 길이가 1m를 넘는 저격총과 성인이 들기도 무거운 중화기까지 있어 박진감 넘치는 총싸움을 할 수 있다.
이날 올림픽공원에 모인 인원은 30여 명이었다. 혼자 온 성인부터 아빠와 함께 온 유치원생, 친구끼리 놀러 온 초등학생 등 다양한 회원이 모여 총싸움을 즐겼다.
규칙은 간단했다. 두 팀으로 나눈 뒤 제한 시간 내 상대편을 더 많이 쓰러뜨린 쪽이 이기는 섬멸전과 좀비전 등으로 진행됐다. 좀비전은 술래(좀비)로 지목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터치해 좀비로 감염시키는 놀이다. 좀비가 총을 맞으면 5초 동안 마비되지만 게임 후반부가 되면 좀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생존이 점점 힘들어진다.
나무 외엔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았던 공터는 카페 말랑팡스 주인인 김동환 씨가 설치한 장애물 덕에 그럴듯한 시가전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을 넣어 채운 드럼통 모양의 장애물이 엄폐물 역할을 해줬다. 입맛대로 개조할 수 있는 너프건
이날 모인 회원 중에는 너프건이 좋아 혼자 온 어른도 꽤 있었다. 이창민 씨(32)는 “조카와 놀아주려고 샀다가 오히려 내가 너프건에 빠져 너프워에도 참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닉네임 ‘짜가천사’(45)는 본래 밀리터리 마니아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날도 디지털 위장 무늬가 그려진 군복에 전투조끼를 입고 참전해 한껏 분위기를 살렸다. 군용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지만 BB탄총에는 왠지 손이 안 갔다고 했다. 그러다 마트에 있는 장난감 매대에서 너프건을 만난 뒤 마니아가 됐다. 그는 “보통 너프워를 야외에서 하기 때문에 바깥바람을 쐬기 좋고 아이들과 같이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게 매력”이라고 했다.
성인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너프건이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게 있다고 했다. ‘해머샷’은 서부영화 속 카우보이의 무기를 재현한 권총으로, 해머(공이)를 엄지로 당겨 장전하는 방식이다. 영화 ‘놈놈놈’ 속의 박도원(정우성 분)처럼 총을 한 바퀴 돌려 멋지게 장전할 수 있는 모델(슬링파이어)은 없어서 못 구한다.
실제 총 부럽지 않은 부착물도 너프건의 매력 포인트다. 가늠자 대신 밝게 빛나는 빨간 점으로 적을 쉽게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레드도트사이트’는 물론 영화에서 나올 법한 ‘레이저사이트’도 부착해 쓸 수 있다. 레이저사이트란 영화에서 표적의 몸에 빨간 점을 비추는 장비로, 너프건에서는 레이저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불빛을 이용한다. 아이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총열 아래 유탄발사기나 산탄총을 추가로 장착해 보조무기로도 쓸 수 있다.
이날 ‘모듈러스 레귤레이터’를 들고 너프워에 참전했다. 방아쇠를 누르고 있는 만큼 연사가 되는 자동소총이다. 너프건 중 유일하게 연사와 3점사, 단발을 골라 사용할 수 있는 총으로 인기가 많다. 여기에 빠른 조준을 위한 레드도트사이트, 총열 아래 보조무기인 ‘그립 블래스터’도 달았다.
하지만 기자의 무기는 ‘순정’ 상태의 초보자 무기에 불과했다. 3D(3차원) 프린터로 직접 찍어낸 부품을 부착해 너프건의 원형을 알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개조한 무기를 들고 온 성인 회원도 있었다. ‘AK-47(러시아제 자동소총)’이나 ‘벡터(미국 기관단총)’ 같은 실총과 꼭 닮아 있었다. “너프건이 애들 장난감이라고요? 누가 그래요?” 성인 회원들의 말이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전쟁’이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돌격부대는 생각이 많지 않은 초등학생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은 채 적을 향해 돌진했다. 드럼통 모양 엄폐물까지의 거리는 약 5m. 하지만 그곳에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나서기 무섭게 ‘스펀지 총알’이 쏟아졌다. 온몸에 총알을 맞고 전사한 어린이들은 비명 대신 “에이 맞았네”라고 툴툴거리며 경기장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적들이 탄창을 새로 갈아 끼우는 순간. 기자를 포함한 어른들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엄폐물 뒤에서 둔중한 덩치를 수줍게 숨기고 있던 어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적진을 향해 뛰쳐나갔다. 상대편에서 ‘웅웅’ 하는 모터 소리가 들리며 스펀지 총알이 빗발쳤다. 총알 비를 피해 엄폐물로 몸을 숨긴 뒤 돌진해오는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현역 시절 명사수의 본능이 살아났다. 탄창을 갈아 끼우려는 찰나 다리에 뭔가 느낌이 왔다. 윽, 총에 맞았다. 측면 기습에 당했다. “으악, 저 사망요. 전사 전사.” 다소곳이 총을 들고 경기장 밖으로 나갈 차례였다.
안전하게 즐기는 총싸움의 매력
지난 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는 11월 정기 ‘너프워’가 열렸다. 서울 지역 너프건 애호가의 모임인 네이버 카페 ‘말랑팡스’가 주최한 행사였다. 너프워는 장난감 총 너프건을 들고 서바이벌 등 총싸움을 하는 놀이다. 너프건은 미국 완구업체 해즈브로가 내놓은 안전한 장난감 총이다. 최대 20m 정도 날아가는 스펀지 총알을 사용한다. 아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안경만 쓰면 얼마든지 다칠 걱정 없이 놀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나 갖고 놀 만한 장난감으로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손바닥만 한 권총부터 길이가 1m를 넘는 저격총과 성인이 들기도 무거운 중화기까지 있어 박진감 넘치는 총싸움을 할 수 있다.
이날 올림픽공원에 모인 인원은 30여 명이었다. 혼자 온 성인부터 아빠와 함께 온 유치원생, 친구끼리 놀러 온 초등학생 등 다양한 회원이 모여 총싸움을 즐겼다.
규칙은 간단했다. 두 팀으로 나눈 뒤 제한 시간 내 상대편을 더 많이 쓰러뜨린 쪽이 이기는 섬멸전과 좀비전 등으로 진행됐다. 좀비전은 술래(좀비)로 지목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터치해 좀비로 감염시키는 놀이다. 좀비가 총을 맞으면 5초 동안 마비되지만 게임 후반부가 되면 좀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생존이 점점 힘들어진다.
나무 외엔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았던 공터는 카페 말랑팡스 주인인 김동환 씨가 설치한 장애물 덕에 그럴듯한 시가전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을 넣어 채운 드럼통 모양의 장애물이 엄폐물 역할을 해줬다. 입맛대로 개조할 수 있는 너프건
이날 모인 회원 중에는 너프건이 좋아 혼자 온 어른도 꽤 있었다. 이창민 씨(32)는 “조카와 놀아주려고 샀다가 오히려 내가 너프건에 빠져 너프워에도 참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닉네임 ‘짜가천사’(45)는 본래 밀리터리 마니아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날도 디지털 위장 무늬가 그려진 군복에 전투조끼를 입고 참전해 한껏 분위기를 살렸다. 군용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지만 BB탄총에는 왠지 손이 안 갔다고 했다. 그러다 마트에 있는 장난감 매대에서 너프건을 만난 뒤 마니아가 됐다. 그는 “보통 너프워를 야외에서 하기 때문에 바깥바람을 쐬기 좋고 아이들과 같이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게 매력”이라고 했다.
성인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너프건이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게 있다고 했다. ‘해머샷’은 서부영화 속 카우보이의 무기를 재현한 권총으로, 해머(공이)를 엄지로 당겨 장전하는 방식이다. 영화 ‘놈놈놈’ 속의 박도원(정우성 분)처럼 총을 한 바퀴 돌려 멋지게 장전할 수 있는 모델(슬링파이어)은 없어서 못 구한다.
실제 총 부럽지 않은 부착물도 너프건의 매력 포인트다. 가늠자 대신 밝게 빛나는 빨간 점으로 적을 쉽게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레드도트사이트’는 물론 영화에서 나올 법한 ‘레이저사이트’도 부착해 쓸 수 있다. 레이저사이트란 영화에서 표적의 몸에 빨간 점을 비추는 장비로, 너프건에서는 레이저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불빛을 이용한다. 아이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총열 아래 유탄발사기나 산탄총을 추가로 장착해 보조무기로도 쓸 수 있다.
이날 ‘모듈러스 레귤레이터’를 들고 너프워에 참전했다. 방아쇠를 누르고 있는 만큼 연사가 되는 자동소총이다. 너프건 중 유일하게 연사와 3점사, 단발을 골라 사용할 수 있는 총으로 인기가 많다. 여기에 빠른 조준을 위한 레드도트사이트, 총열 아래 보조무기인 ‘그립 블래스터’도 달았다.
하지만 기자의 무기는 ‘순정’ 상태의 초보자 무기에 불과했다. 3D(3차원) 프린터로 직접 찍어낸 부품을 부착해 너프건의 원형을 알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개조한 무기를 들고 온 성인 회원도 있었다. ‘AK-47(러시아제 자동소총)’이나 ‘벡터(미국 기관단총)’ 같은 실총과 꼭 닮아 있었다. “너프건이 애들 장난감이라고요? 누가 그래요?” 성인 회원들의 말이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