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풍력업계에선 내년 초 착공할 한림해상풍력발전소가 ‘뜨거운 감자’다. 해상풍력으로 국내 최대 규모(100㎿급)로 추진되고 사업비도 5000억원이 넘는 대형 사업이어서다. 규모가 큰 만큼 풍력발전기를 누가 공급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효성과 두산중공업, 독일 지멘스와 센비온,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쟁쟁한 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금으로선 외국산이 유리하다. 경제성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재생 딜레마'를 어찌할꼬…
23일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전력기술에서 받은 ‘한림해상풍력발전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멘스 장비는 내부수익률(IRR)이 7.16%로 6개 제품 중 1위를 차지했다. 효성(5.26%)과 두산(4.74%) 장비는 각각 4위, 6위에 그쳤다. 국산 장비 수익성이 지멘스의 60~70%에 그친다는 얘기다.

수익성만 보면 외국산을 써야 한다. 더구나 한림 사업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공기업 단독으로 수행하는 사업보다 수익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SPC 최대주주(지분 29%)인 한전도 적자가 커 한푼이라도 비용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최대 규모 사업에서 발전기라는 노른자를 외국에 뺏기면 국내 산업에 타격이 크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발전기를 외국에 주면 블레이드(날개) 같은 부품도 다 외국산을 써야 하고 시공 장비 인력까지 외국에서 들여와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관련 중소기업도 일감을 뺏긴다”고 말했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외국산을 쓰자니 막 자라나는 국내 산업의 새싹을 밟는 꼴이 될 우려가 있고 국산을 쓰자니 수익성이 떨어져 고민”이라고 했다.

공기업이 참여한 사업에선 이런 고민이라도 하지만 민간기업이 발주하는 사업은 철저히 수익성을 따라간다. 태양광발전도 상황이 비슷하다. 국산 장비가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산보다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핵심 장비인 태양광 모듈이 특히 그렇다. 한 태양광발전 사업자는 “중국산 모듈의 품질이 좋아져 우리처럼 한푼이 아쉬운 중소업체는 굳이 국산을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외국산의 시장 잠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풍력발전기는 외국산 점유율이 2014년 0%에서 올 9월 70%까지 급증했다. 태양광 모듈도 같은 기간 17.1%에서 33.4%로 늘었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기술 경쟁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급량만 늘리겠다고 선언한, 설익은 정책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작년 7.6%에서 2030년 20%까지 늘리겠다면서도 올해 풍력 핵심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342억원을 배정하는 데 그쳤다. 2014년(440억원)보다 100억원 가까이 적은 액수다. 윤한홍 의원은 “정부가 국내 산업의 경쟁력 수준도 따지지 않고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만 혈안이 되다 보니 국내 산업이 외국산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이제라도 기술력 확보, 부품사 육성 등 종합적인 산업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선진국도 전략적으로 키우는 분야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쓴다”며 “국제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국산 장비를 최대한 사용해 산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