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포노사피엔스 사로잡으려면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라
아마존은 지난해 ‘아마존 프라임 옷장’ 서비스(사진)를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를 3개 이상 선택한 뒤 주문한다. 물건을 받아 7일 안에 착용해보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반송할 수 있다. 배달된 상품 중 3개 품목 이상을 구매하면 10%, 5개 넘게 사면 20%까지 할인해준다. 반송할 물건은 반품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내면 된다. 연회비 99달러(약 11만원)를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을 위해 오프라인에서 입어보거나 신어보는 ‘수고’마저 덜어주는 서비스다. 원하는 시간에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on-demand) 시스템이다. 국내엔 원할 때 자동차를 가져가 세차한 뒤 다시 갖다주는 ‘와이퍼’, 매주 3~5벌의 셔츠를 정기적으로 세탁해주는 ‘위클리 셔츠’라는 서비스가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와 전정호 링크샵스 전략기획팀장이 함께 쓴 《버튼 터치 하트》는 이처럼 모든 것이 서비스화하고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스마트 장치들을 통해 확장된 세계엔 ‘버튼’이 있다. 한 번의 ‘터치’로 의사를 전하고 그를 통해 만든 것은 ‘사랑’을 받는다.

[책마을] 포노사피엔스 사로잡으려면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라
버튼은 새로운 세계, 터치는 그곳에서의 소통과 상호작용, 하트는 그것을 통해 누리는 가치와 행복을 의미한다. 책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생산자와 유통자 소비자가 공유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이를 위해 모든 기업이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상거래가 미디어와 통합돼가는 현장을 추적한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로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서비스는 사용자의 위치와 상황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시간에 스마트 기기로 전달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푸시 형태 광고나 키오스크(KIOSK·무인정보단말기) 장치를 통한 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한다.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은 국내 기업들이 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책엔 삼성전자가 사례로 등장한다. 삼성전자는 2014년 스마트홈 허브 서비스를 하는 스마트 싱스를 약 2000억원에 인수했다. 2015년엔 스마트 결제 서비스 회사 루프페이(약 2700억원)를, 2016년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업체 비브랩스(약 2400억원)를 샀다. 저자들은 선도 사업자에 대한 추격의 결과와 그 효과에 의문을 나타낸다. 삼성전자가 스마트 싱스를 사들인 것은 같은해 1월 구글이 스마트 온도 조절기 회사 네스트를 인수한 뒤였다. 루프페이는 애플페이, 비브랩스 인수는 아마존의 음성 인식 스피커 에코 출시에 대한 대응으로 파악했다.

저자들은 “제조만 할 때는 선도 기업의 제품을 뜯어보고 역공학으로 그 성능을 따라갈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제품이 서비스와 결합되는 시대로, 서비스는 역공학을 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서비스는 네트워크와 알고리즘, 데이터와 결합돼 있다. 제품 성능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네트워크 규모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추격이 아니라 혁신을 통한 선도 전략이 유효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연구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 제안서엔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언제까지 따라잡을 것인지 써야 한다. 어디에도 없는 것을 처음 하겠다는 패기는 정부의 지원이나 벤처 투자로부터 외면받는다. 대놓고 ‘따라 만들겠다’고 해야 일이 훨씬 쉽게 풀리는 셈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제안서를 앞에 두고 “해외 사례가 있냐고 묻지 말라”고 조언한다. 있으면 이미 뒤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조직이 유연하고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오늘날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책은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빨리 실패하라 그리고 반복하라(Fail fast and iterate)’는 문구도 소개한다. 신속하게 변화를 읽고 작은 것부터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책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버튼’을 만들고 ‘터치’를 유도해 ‘하트’를 얻어야 하는지를 안내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기업인과 독창성을 감별하는 심미안을 가져야 할 투자자, 정책 담당자들에게 유용할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