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닷새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1년10개월여 만에 2000선 밑으로 주저앉았다. 코스닥지수도 5% 넘게 급락하며 630선이 붕괴됐다. 외국인이 8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며 2조원 가까운 매물 폭탄을 쏟아내는 가운데 3분기 상장사 실적마저 ‘어닝 쇼크(실적 충격)’ 수준의 발표가 잇따르자 개인들도 투매에 나서고 있다. 29일 코스피지수는 31.10포인트(1.53%) 내린 1996.05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22개월 전인 2016년 12월7일(1991.89) 후 처음이다. 장중 한때는 1993.77까지 떨어졌다. 지수는 오전 한때 금융당국의 증시 안정화 대책이 나오자 잠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서면서 다시 곤두박질쳤다.이날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자본시장 안정화를 위해 코스닥 스케일업펀드를 포함한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성·운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은 외국인 ‘팔자’에 급락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8거래일째 팔자 행진을 이어가며 1593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개인도 매물을 쏟아내며 488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기관은 6364억원어치 순매수했다.박희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다음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증시가 2%가량 떨어진 것도 코스피지수 낙폭을 키웠다”고 분석했다.코스닥지수는 하락폭이 더 컸다. 코스닥지수는 33.37포인트(5.03%) 떨어진 629.70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8월14일(629.37) 후 1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경기 침체 우려가 증폭되면서 채권 금리도 하락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074%포인트 떨어진 연 1.894%로 장을 마감했다. 10년물 금리는 0.077%포인트 하락한 연 2.171%를 기록하며 1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오형주/김진성 기자 ohj@hankyung.com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불안요인 때문에 휘청이는 한국 증시에 ‘기업 실적 악화’라는 악재까지 덮쳤다. 29일 코스피지수 2000선이 깨진 데는 3분기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발표한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현대위아 등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급감한 기업들의 주가가 줄줄이 10% 넘게 하락했다. 외국인이 이달 들어서만 3조원어치 이상 매각하는 등 수급기반이 약해지고, 투자심리가 급랭한 상황에서 기업 실적마저 기대 이하로 나오자 시장이 예상보다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어닝 쇼크에 줄줄이 급락이날 코스피지수는 장 초반 0.92%가량 상승하며 반등을 시도했지만 오후 2시 무렵부터 낙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아모레퍼시픽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영업이익이 급감했다는 내용의 3분기 실적을 내놓은 직후였다.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G는 3분기에 각각 765억원과 84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24.3%와 36.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G는 이날 각각 2만3500원(12.81%)과 1만700원(14.74%) 내린 16만원과 6만19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 26일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한 현대위아도 이날 주가가 11.13% 급락했다. 현대위아가 이날 기록한 종가 2만9550원은 2011년 2월21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후 최저치다. 현대자동차도 25일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0% 급감했다는 내용의 실적공시를 낸 뒤 주가가 급락했다. 현대차는 실적 발표 후 9.40% 하락했다.◆3분기 실적 우려 확대증권업계에선 3분기 실적시즌 전부터 상장사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컸다. “2분기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등의 요인이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될 것”(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이란 이유에서였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가 있는 180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총 51조8779억원으로, 1개월 전(53조539억원)보다 2.22% 감소했다.아직 3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기업 중에서도 어닝 쇼크가 우려되는 곳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넷마블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1개월 전보다 16.11% 감소했고, 한국전력(1개월 전 대비 영업이익 컨센서스 증감률 -15.85%) 코오롱인더스트리(-12.69%) 등도 실적 충격이 예상되는 종목으로 꼽힌다.◆“당분간 반등 기대 어려워”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한국 상장사들의 실적 매력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조정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지적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들의 올해 실적 전망치 기준 주당순이익(EPS) 컨센서스는 한 달 전보다 1.0% 감소했다. 반면 미국(S&P500지수 기준)은 같은 기간 0.2% 감소하는 데 그쳤고, 일본(토픽스지수)은 0.1% 증가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요즘 만나는 투자자들은 내년 한국 상장사들의 실적이 증권사 전망치를 크게 밑돌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한국은행이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역전 등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유출에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경제신문이 29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지난달 27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은, 금융감독원의 고위관계자가 참석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앞으로) 상당 폭의 외국인 자금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윤 부총재가 3개월마다 열리는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외국인 자금의 국내시장 이탈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올 들어 이날이 처음이었다. 윤 부총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12월 추가 기준금리 인상과 미·중 간 무역 분쟁, 신흥국 금융 불안 등의 전개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자의 심리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윤 부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한은이 그동안 외국인 자금 향방에 대해 공개적으로 내놓은 전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의 건전성이 양호해 외국인 자금이 큰 폭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채권시장에선 “한은이 외국인 자금 유출을 우려하고 있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이달 들어 금통위 회의 전날까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선 각각 2조4605억원, 9838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됐다.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한은 내부 문건을 보면 금융시장 안정을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삼는 한은이 글로벌 투자금의 한국 엑소더스(대탈출)를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이후 글로벌 상업은행 등 단기매매 차익을 노리는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 세력은 금리나 환율 변동에 따라 자금을 순식간에 넣고 빼는 경향이 강하다.하헌형/노유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