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전44기에 눈물 쏟은 전인지 "상처받은 마음에 주변 격려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더 미웠다."(일문일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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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끝낸 그가 환하게 웃었다. 웃음 속에 참아내는 눈물이 보였다. 팬들이 울었다.
‘덤보’ 전인지(24·KB금융그룹)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4일 인천 스카이72 오션코스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서다. 2016년 9월 에비앙챔피언십 이후 44번째 대회, 25개월만의 우승이자 통산 14승(한국 9승,미국 3승,일본 2승)째다. 전인지는 우승이 확정되자 “힘든 시간이 떠올랐다.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한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국, 미국,일본에서 메이저 5연승을 올렸던 그였다. ‘메이저 퀸’이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미국 무대 데뷔해인 2016년엔 신인상과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까지 탔다. 루키가 최저타수상을 받은 건 LPGA 38년만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후 우승은 오지 않았다. 준우승만 여섯 번. ‘2인자’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예민해졌다. 조울증까지 왔다. 사람들의 혼잣말, 의례적인 격려, 배설물같은 시시한 댓글에도 상처받았다.
그는 예의바르다. 늘 두 손으로 캐디에게 클럽을 건넨다. 그리고 여리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 어드레스를 풀어도 셔터음이 나온 방향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곤 웃는다. 팬들이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돌아서서 눈인사를 한다. 세컨드샷을 하러 가는 와중에도 그렇다.
그리고 긍정적이다. 준우승을 해도 ‘이정도가 어디냐’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댓글이 따라붙었다. ‘우아한 척 한다!’,‘웃음이 나오냐?’‘가식적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무의식에 자만이, 가식이 있는 게 아닐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드러내보자고 마음먹었다. 퍼팅이 안되면 퍼터를 땅에 한 번 내리쳐보자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더 어색했다.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게 맞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분위기 전환을 꾀할 겸 머리를 스스로 잘랐다. 그랬더니 또 루머가 터져나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부모님이 강제로 잘랐다’….
2년의 시련을 끝낼 수 있었던 힘은 UL인터내셔널크라운이었다. 고국 팬들의 응원 앞에서 4전전승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의 첫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에게 골프는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었다. 전인지는 2016년 에비앙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골프는 단체종목이라고 본다. 매니저,스폰서,코치,가족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닌 ‘우리’에 기여했다는 스스로의 대견함이 고개숙였던 자존감을 깨우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양한 시선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힘이 생겼다.
전인지는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다 털어버리고 가려는 듯 그간 롤러코스터 같았던 마음의 여정을 가감없이 쏟아내 보였다. 그는 “악성 댓글에 여자로서,인간으로서 상처를 받기도 했고, 상처받은 내가 주변을 힘들게도 했다. 그런 내가 또 싫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건강해야 한다’는 병상에 계신 할머니의 격려에 나 자신을 믿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도 했다. 전인지는 인터뷰 중에도 눈물을 참느라 울먹였다.전인지는 오는 18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CC에서 개막하는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도 출전해 3주 연속 국내 대회에 얼굴을 드러낸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온갖 감정이 많이 들 것 같다. 소감 한마디?
=우승이 확정됐던 순간 지난 힘들었던 시간들과 함께 그래도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눈물을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할거고 너무 기쁘다.
Q. LPGA 통산 3승이다. 메이저 아닌 대회에서는 첫 우승이다.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과 가장 힘이 된 사람을 말해달라.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하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세 번째 우승도 메이저 대회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대회에서 전혀 집중하지 않거나 우승을 바라지 않고 플레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 한번에 온 게 아니라 조금씩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바닥으로 밀어 넣었던 거 같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가족은 물론 프로님, 매니지먼트팀 저를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이번 대회 모든 분들앞에서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쁘다.
Q. 지난주 우승한 후 내내 사람들이 계속 전환점이 될 거라고 해서 ‘믿어보려고 한다, 나 자신을 믿어보련다’하고 얘기했는데 사실 지난주에 우승하고 전인지 선수는 진짜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는가?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었다’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앞서 말했듯 힘든 시간들이 한 번에 온 게 아니라 조금씩 힘들게 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가 너에게 터닝포인트가 될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도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니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조금씩 힘들어졌는데 한순간에 좋아질 수 있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었는데 이럴 때 조금 더 마음가짐을 건강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자 나를 위해 얘기해주는 분들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고 생각하고 믿으려고 했다. 마지막 홀 플레이 하면서도 그 말들을 떠오르면서 나 자신을 믿어갔다.
Q. 전인지 선수를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가?
=솔직한 마음으로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지난 힘든 시간동안 제 상태가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주에 많은 팬 분들 앞에서 응원 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복 받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Q. 이번 주에 그 어느 때보다 볼 스트라이킹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대회 시작하기 앞서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다. 이번 대회를 하면서 샷이 잘됐다기보다는 믿음이 우승으로 이끌어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샷이 잘 되서 우승을 했었나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다른 사람들 경기에 반응하지 말고 내 스타일을 잘 발휘해보자고 했던게 샷 컨디션 여부와 상관없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다.
Q.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가? 인터넷 악플들과 관계가 있는가?
=관계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 같다.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20살, 21살때 투어에 막 올라서 우승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인터넷에 제 사진이 나오고 하는게 너무 신기했다. 응원해주시는 실시간 댓글들도 보였다. 다 제 잘 안되고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겠지 생각하려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참기 힘든 속상한 말들이 있었다. 아무리 반응하지 않으려 해도 가슴에 콕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말들에 반응하는 제 자신이 밉고 한심하고 그랬다. 그런 것들이 여러 힘든 일들 속에서 저를 밑에서 ‘더 움직이고 싶지 않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너무 무섭고 내가 다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저라는 사람을 보여줬을 때 듣게 되는 욕이 싫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진실 되게 사람을 대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활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 그 중 하나가 상대선수를 깎아내리는 것 보다는 같이 응원하고 모두가 잘 어우러져서 잘되는 따뜻한 환경을 원한다.
Q. 12번홀에서 파를 지킨 게 중요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가?
=첫날 둘째날 보기가 하나씩 있었고 3라운드에서 보기 하나 있었다. 오늘도10번 홀에서 보기가 하나 더 나오면서 오늘은 더 이상 보기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매주 대회마다 한 번의 칩인을 한번씩은 하자라는 목표가 있었다.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는 잘 안됐는데 이번 주는 저번주 것까지 2번 해보자 했는데 첫날 4번 홀에서 칩인버디가 있었고 한번 더 해야지하는 생각이 있었다. 12번홀에서 두 가지 생각들이 합쳐져서 큰 자신감으로 작용했고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Q. 이번에 라운드를 돌면서 하이파이브 몇 번 했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웃음)
Q. 이번 우승이 LPGA는 25개월만이고, 한국에서 우승은 3년 만이다. 그동안 머리스타일도 바꾸기도 했는데 극복한 과정을 설명해 달라.
=올해 4월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스타일이고 별 의미없이 조금더 나은 모습을 위해 머리를 잘랐다. 그때도 많이 속상했다. 별 의미없는 헤어스타일 변신이었고, 저한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것에 대해 루머가 생겼다. 누구보다 끝까지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안 좋은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속상했다. 지나고 보면 작은 것들인데 그때의 저한텐 작지 않았다. 너무 크게 반응했고 그런 것들이 모여 한때는 바닥이 있는 이곳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생일에 한국에 있으면서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할머니께 생일축하를 받고 싶어 새벽부터 달려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기억을 못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셔 30분 면회가 가능했고 29분이 되어 나오는 순간 손을 잡고 해 주신 ‘건강해야 돼’ 하는 한 마디를 듣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나와야하는 상황에서 ‘내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를 건강하게 해 봐야겠다’ 하면서 ‘그것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제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보지 않고 저를 위해주는 말들에는 진심을 보려고 노력했다.
Q. 인스타그램보면 올해 부진을 떨쳐보려는 노력으로 열기구를 탄다거나 최근에 아이스하키도 배우는 것 같은데 기량회복이나 컨디션회복에 도움이 되셨는가.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전부가 아니다. 저의 직업은 골프선수다. 25살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이름은 전인지라는 사람인데 모두가 아는 골프가 아닌 다른 것을 했을 때 같이 보여드리고 공유하고 그러는 공간이라는게 첫 번째다. 절대 열기구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하고 좋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골프가 뒷전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인스타라는 공간을 골프에 관련된 것으로 채우는 사람도 있고 저라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전인지의 모습, 저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사진 속 그 순간들은 제가 모두 다 행복했던 순간이고 같이 공유하고 싶었던 것을 올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부유한 가정환경이 아니어서 부모님이 바빴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랑 밥을 먹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과 반찬들로 할머니랑 하루를 보내면서 먹고 자랐다. 가족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나. 가족이 아프다는 것은 속상한데 소중한 사람이 저를 기억하지 못했을 때는 너무 슬펐다. 할머니가 제 골프경기를 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셨는데 그런 할머니께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를 놓치고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한테 스스로 힘들게 하기도 했다. 오늘 할머니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너무 기쁘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많이 기뻐하시고 ‘손녀딸 잘했다’ 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Q. 오늘 어떻게 자축을 할 것인가?
=저도 몰랐는데 한국에서는 오늘이 와인데이라고 한다. 선수들이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머무는데 바우처가 있었다. 와인 한 병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다 같이 와인으로 축하할까 생각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덤보’ 전인지(24·KB금융그룹)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4일 인천 스카이72 오션코스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서다. 2016년 9월 에비앙챔피언십 이후 44번째 대회, 25개월만의 우승이자 통산 14승(한국 9승,미국 3승,일본 2승)째다. 전인지는 우승이 확정되자 “힘든 시간이 떠올랐다.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한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국, 미국,일본에서 메이저 5연승을 올렸던 그였다. ‘메이저 퀸’이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미국 무대 데뷔해인 2016년엔 신인상과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까지 탔다. 루키가 최저타수상을 받은 건 LPGA 38년만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후 우승은 오지 않았다. 준우승만 여섯 번. ‘2인자’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예민해졌다. 조울증까지 왔다. 사람들의 혼잣말, 의례적인 격려, 배설물같은 시시한 댓글에도 상처받았다.
그는 예의바르다. 늘 두 손으로 캐디에게 클럽을 건넨다. 그리고 여리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 어드레스를 풀어도 셔터음이 나온 방향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곤 웃는다. 팬들이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돌아서서 눈인사를 한다. 세컨드샷을 하러 가는 와중에도 그렇다.
그리고 긍정적이다. 준우승을 해도 ‘이정도가 어디냐’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댓글이 따라붙었다. ‘우아한 척 한다!’,‘웃음이 나오냐?’‘가식적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무의식에 자만이, 가식이 있는 게 아닐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드러내보자고 마음먹었다. 퍼팅이 안되면 퍼터를 땅에 한 번 내리쳐보자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더 어색했다.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게 맞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분위기 전환을 꾀할 겸 머리를 스스로 잘랐다. 그랬더니 또 루머가 터져나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부모님이 강제로 잘랐다’….
2년의 시련을 끝낼 수 있었던 힘은 UL인터내셔널크라운이었다. 고국 팬들의 응원 앞에서 4전전승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의 첫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에게 골프는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었다. 전인지는 2016년 에비앙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골프는 단체종목이라고 본다. 매니저,스폰서,코치,가족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닌 ‘우리’에 기여했다는 스스로의 대견함이 고개숙였던 자존감을 깨우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양한 시선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힘이 생겼다.
전인지는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다 털어버리고 가려는 듯 그간 롤러코스터 같았던 마음의 여정을 가감없이 쏟아내 보였다. 그는 “악성 댓글에 여자로서,인간으로서 상처를 받기도 했고, 상처받은 내가 주변을 힘들게도 했다. 그런 내가 또 싫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건강해야 한다’는 병상에 계신 할머니의 격려에 나 자신을 믿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도 했다. 전인지는 인터뷰 중에도 눈물을 참느라 울먹였다.전인지는 오는 18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CC에서 개막하는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도 출전해 3주 연속 국내 대회에 얼굴을 드러낸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온갖 감정이 많이 들 것 같다. 소감 한마디?
=우승이 확정됐던 순간 지난 힘들었던 시간들과 함께 그래도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눈물을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할거고 너무 기쁘다.
Q. LPGA 통산 3승이다. 메이저 아닌 대회에서는 첫 우승이다.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과 가장 힘이 된 사람을 말해달라.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하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세 번째 우승도 메이저 대회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대회에서 전혀 집중하지 않거나 우승을 바라지 않고 플레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 한번에 온 게 아니라 조금씩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바닥으로 밀어 넣었던 거 같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가족은 물론 프로님, 매니지먼트팀 저를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이번 대회 모든 분들앞에서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쁘다.
Q. 지난주 우승한 후 내내 사람들이 계속 전환점이 될 거라고 해서 ‘믿어보려고 한다, 나 자신을 믿어보련다’하고 얘기했는데 사실 지난주에 우승하고 전인지 선수는 진짜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는가?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었다’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앞서 말했듯 힘든 시간들이 한 번에 온 게 아니라 조금씩 힘들게 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가 너에게 터닝포인트가 될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도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니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조금씩 힘들어졌는데 한순간에 좋아질 수 있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었는데 이럴 때 조금 더 마음가짐을 건강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자 나를 위해 얘기해주는 분들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고 생각하고 믿으려고 했다. 마지막 홀 플레이 하면서도 그 말들을 떠오르면서 나 자신을 믿어갔다.
Q. 전인지 선수를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가?
=솔직한 마음으로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지난 힘든 시간동안 제 상태가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주에 많은 팬 분들 앞에서 응원 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복 받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Q. 이번 주에 그 어느 때보다 볼 스트라이킹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대회 시작하기 앞서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다. 이번 대회를 하면서 샷이 잘됐다기보다는 믿음이 우승으로 이끌어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샷이 잘 되서 우승을 했었나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다른 사람들 경기에 반응하지 말고 내 스타일을 잘 발휘해보자고 했던게 샷 컨디션 여부와 상관없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다.
Q.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가? 인터넷 악플들과 관계가 있는가?
=관계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 같다.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20살, 21살때 투어에 막 올라서 우승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인터넷에 제 사진이 나오고 하는게 너무 신기했다. 응원해주시는 실시간 댓글들도 보였다. 다 제 잘 안되고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겠지 생각하려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참기 힘든 속상한 말들이 있었다. 아무리 반응하지 않으려 해도 가슴에 콕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말들에 반응하는 제 자신이 밉고 한심하고 그랬다. 그런 것들이 여러 힘든 일들 속에서 저를 밑에서 ‘더 움직이고 싶지 않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너무 무섭고 내가 다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저라는 사람을 보여줬을 때 듣게 되는 욕이 싫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진실 되게 사람을 대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활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 그 중 하나가 상대선수를 깎아내리는 것 보다는 같이 응원하고 모두가 잘 어우러져서 잘되는 따뜻한 환경을 원한다.
Q. 12번홀에서 파를 지킨 게 중요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가?
=첫날 둘째날 보기가 하나씩 있었고 3라운드에서 보기 하나 있었다. 오늘도10번 홀에서 보기가 하나 더 나오면서 오늘은 더 이상 보기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매주 대회마다 한 번의 칩인을 한번씩은 하자라는 목표가 있었다.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는 잘 안됐는데 이번 주는 저번주 것까지 2번 해보자 했는데 첫날 4번 홀에서 칩인버디가 있었고 한번 더 해야지하는 생각이 있었다. 12번홀에서 두 가지 생각들이 합쳐져서 큰 자신감으로 작용했고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Q. 이번에 라운드를 돌면서 하이파이브 몇 번 했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웃음)
Q. 이번 우승이 LPGA는 25개월만이고, 한국에서 우승은 3년 만이다. 그동안 머리스타일도 바꾸기도 했는데 극복한 과정을 설명해 달라.
=올해 4월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스타일이고 별 의미없이 조금더 나은 모습을 위해 머리를 잘랐다. 그때도 많이 속상했다. 별 의미없는 헤어스타일 변신이었고, 저한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것에 대해 루머가 생겼다. 누구보다 끝까지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안 좋은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속상했다. 지나고 보면 작은 것들인데 그때의 저한텐 작지 않았다. 너무 크게 반응했고 그런 것들이 모여 한때는 바닥이 있는 이곳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생일에 한국에 있으면서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할머니께 생일축하를 받고 싶어 새벽부터 달려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기억을 못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셔 30분 면회가 가능했고 29분이 되어 나오는 순간 손을 잡고 해 주신 ‘건강해야 돼’ 하는 한 마디를 듣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나와야하는 상황에서 ‘내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를 건강하게 해 봐야겠다’ 하면서 ‘그것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제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보지 않고 저를 위해주는 말들에는 진심을 보려고 노력했다.
Q. 인스타그램보면 올해 부진을 떨쳐보려는 노력으로 열기구를 탄다거나 최근에 아이스하키도 배우는 것 같은데 기량회복이나 컨디션회복에 도움이 되셨는가.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전부가 아니다. 저의 직업은 골프선수다. 25살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이름은 전인지라는 사람인데 모두가 아는 골프가 아닌 다른 것을 했을 때 같이 보여드리고 공유하고 그러는 공간이라는게 첫 번째다. 절대 열기구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하고 좋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골프가 뒷전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인스타라는 공간을 골프에 관련된 것으로 채우는 사람도 있고 저라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전인지의 모습, 저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사진 속 그 순간들은 제가 모두 다 행복했던 순간이고 같이 공유하고 싶었던 것을 올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부유한 가정환경이 아니어서 부모님이 바빴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랑 밥을 먹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과 반찬들로 할머니랑 하루를 보내면서 먹고 자랐다. 가족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나. 가족이 아프다는 것은 속상한데 소중한 사람이 저를 기억하지 못했을 때는 너무 슬펐다. 할머니가 제 골프경기를 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셨는데 그런 할머니께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를 놓치고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한테 스스로 힘들게 하기도 했다. 오늘 할머니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너무 기쁘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많이 기뻐하시고 ‘손녀딸 잘했다’ 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Q. 오늘 어떻게 자축을 할 것인가?
=저도 몰랐는데 한국에서는 오늘이 와인데이라고 한다. 선수들이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머무는데 바우처가 있었다. 와인 한 병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다 같이 와인으로 축하할까 생각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