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5일 서울 오류동의 행복주택단지에 있는 신혼부부 집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이들을 찾아가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5일 서울 오류동의 행복주택단지에 있는 신혼부부 집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이들을 찾아가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경DB
지난달 1일 한국 야구 대표팀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땄으니 축하받아야 마땅한데 비난 여론이 더 거셌다. 비난의 대상은 LG 트윈스의 유격수 오지환과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 박해민이었다. ‘실력이 안되는데 불공정하게 발탁됐다’는 지적이 나왔고, 군 면제까지 확정되자 분노 여론이 폭발했다. 병역특례 논란은 이전 국제대회 때도 있었지만 대회가 지나면 가라앉았다. 이번은 달랐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는 집요했다. 대회 이후에도 쉼 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정부는 관련 제도를 1년 안에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에선 ‘오지환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정책 ‘운명’ 가르는 밀레니얼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적 힘이 커지면서 정부 정책에까지 영향을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치·사회에 대한 밀레니얼의 관심이 커진 데다 이들이 익숙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목소리를 증폭시켜주기 때문이다.

철없는 아이들? 병역특례, 가상화폐 규제에 분노…정책도 바꿨다
올초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철회 해프닝은 밀레니얼의 정치적 힘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지난 1월 법무부는 가상화폐 투기 열풍을 잡기 위해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즉각 민심이 들끓었다. ‘개인의 정당한 투자 결정을 왜 국가가 간섭하느냐’는 것이었다. 밀레니얼 세대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20대와 30대의 가상화폐 보유율은 각각 6.2%와 9.4%로 전체 평균(5.2%)을 웃돌았다. 이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비판 글을 쏟아냈다.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의견이 20만 건을 넘어섰다. 20대의 대통령 지지율도 대책 발표 직후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정부는 버티지 못했다. “거래소 폐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밀레니얼의 마음을 잡아라”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하던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부와 국회도 청년 맞춤형 정책, 청년 친화적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책 설계 단계부터 청년층의 목소리를 이전보다 많이 경청하고 있다”며 “청년실업, 저출산 등 청년층의 문제가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청년 주거안정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신혼부부의 집을 직접 찾아가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혁신창업단지를 여러 번 방문해 청년 창업가의 의견을 수렴한 것 등이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국회가 지난해 말 청년미래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정당마다 경쟁적으로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노력은 실제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발표된 신혼부부 청년 주거대책이 대표적이다. 최대 88만 쌍의 신혼부부에게 주택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당초 계획보다 28만 쌍 늘어난 것이다. 정부는 신혼부부 대출 지원조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출 소득기준을 연 70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 발 빠르게 완화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여러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배경에도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밀레니얼의 지지가 유독 두텁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올초 조사한 결과를 보면 30대의 47%가 최저임금 정책에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전 연령층 평균(38%)보다 9%포인트 높다. 20대도 43%가 찬성했다.

잘못된 판단, 빗나간 정책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정책 가운데 이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 대책이 특히 그렇다. 밀레니얼이 출산을 꺼리는 주요 이유는 열악한 보육 환경과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주거·고용 불안 등인데 이런저런 정책을 선택과 집중 없이 백화점식으로 추진하니 정책이 겉돌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초 결혼한 정모씨(33)는 “만 6세 미만 아이에게 한 달에 10만원씩 준다는 아동수당은 정말 우리 세대의 문제가 뭔지 알고나 시행한 정책인지 의심스럽다”며 “출산을 어렵게 하는 여러 사회적 요소가 개선되지 않는데 누가 10만원 준다고 아이를 낳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꺼내든 ‘출산주도성장’이란 표어도 밀레니얼 세대의 민심을 잘못 읽은 사례로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밀레니얼을 ‘아이 낳는 도구’로 간주했다는 비판이다.

이번 정부 들어 예산을 대폭 늘린 청년고용 정책 역시 돈만 퍼붓고 실효성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일례로 중소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뽑으면 인건비를 주는 사업은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정작 청년들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가고 싶을 만한 중소기업을 많이 키우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저 기업에 보조금을 쥐여주니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단기적인 정책을 쏟아내기보다 취업이나 출산을 어렵게 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