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삭’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순간(瞬間)+삭제(削除)의 줄임말이다. 게임 등에서 상대방에게 순간적으로 제거당했을 때 “순삭당했다”는 표현을 쓴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서 보다가 추석이 순삭당했다는 이야기를 추석 직후 심심찮게 들었다. 이 이야기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추석에 몰아보다 보니 어느 순간 추석연휴가 끝났다는 얘기다. 넷플릭스가 우리 일상에 어느새 깊숙이 들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일상 침투와 관련해 최근 망 중립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원래 망 중립성은 2003년 팀 우 컬럼비아대 미디어법 교수가 만들었다. ‘데이터는 수도나 전기와 같은 공공재’이므로,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나 통신사들은 특정 기업에 접속 속도나 이용료에서 혜택을 주거나 차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용자가 방문하고 싶은 사이트를 자유롭게 방문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이슈의 부각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이야기처럼, 망은 SK텔레콤 등 사업자가 깔아 놓았더니 돈은 넷플릭스, 구글, 네이버 등 콘텐츠 플랫폼 업체가 버는 데서 생기는 갈등이다. 이 주장은 최근 구글이 한국에서 번 돈이 네이버를 추월하지만, 거의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는 외국 기업에 대한 거부감과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를 맞아 천문학적 망 구축비를 부담해야 하는 사업자들의 불편함이 결합되면서 더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 6월을 기점으로 망 중립성을 폐지하면서 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국내 망 중립성 문제는 약간 복잡하다.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와 SK텔레콤 등 망 사업자가 SK브로드밴드나 옥수수 등 유력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산업 전체의 경쟁력 측면에서 망 중립성은 유지돼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규제에 안주했을 때 세계 시장 내 국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SK텔레콤 등 인터넷TV(IPTV) 업체는 넷플릭스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한 추천 서비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SK브로드밴드는 인공지능(AI) 기반 미디어 추천 기술을 연내에 상용화하겠다고 밝히면서 460만 가입자마다 개인화된 초기 화면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예전 스크린쿼터제, 일본 대중문화 해제 때도 국내 산업 보호 논리가 나왔지만 개방 결과 K팝, 한국 영화의 높아진 경쟁력이 오늘의 한류를 만들었다.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 국내 시장만을 봐서는 안 된다. 치열한 국내 시장에서 검증된 경쟁력만이 글로벌 경쟁력이 될 것이다

콘텐츠社 무임승차 논란에도 '망 중립성'을 지켜야 할 이유
망 중립성 폐지의 폐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시장 진입을 저해하고 위축시켜 스타트업 생태계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네이버나 넷플릭스는 소비자 ‘록인 효과’를 가지고 있어 망 중립성 폐지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결국 좀 더 우월한 위치에서 경쟁이 가능할 것이다.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스타트업은 시장 진입을 하지 못하거나, 인터넷 망 접속에 있어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존 콘텐츠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석만 넷플릭스에 순삭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 콘텐츠 플랫폼업계도 경쟁력이 없으면 유튜브에, 넷플릭스에 순삭당할 수 있다.

전창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