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이 “출산율 제고 목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매년 급락해 ‘인구절벽’ 문제가 현실화한 가운데 정부기관 위원이 출산율 목표 자체를 부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원재 저출산위 위원은 지난 28일 한 민간 싱크탱크에 보낸 기고문에서 “저출산 추세를 되돌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미국 워싱턴DC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설명하자 딘 베이커 CEPR 소장이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청년 일자리,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며 “저출산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이 위원은 “합계출산율 목표는 노동 투입 중심의 성장에 매달려 청년 세대의 고통을 늘리는 정책 목표”라고도 했다. 출산율 목표를 달성하면 향후 30년간 총부양비(생산가능인구가 부담해야 할 노인과 유소년 인구수)가 늘어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고령사회에서도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소득 정책을 시범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용을 통해서만 생산할 수 있다는 통념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저출산 전문가들은 이 위원의 주장에 대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저출산위 미래기획분과위원장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저출산 현실화에 따라) 단기적으로 일자리 문제가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당장 10년 뒤부터 중소기업 등 근로여건이 좋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인력 부족 문제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했다. 기술 발전으로 노동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50년 전에도 똑같은 주장이 제기됐지만 그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노인과 유소년 부양비를 구분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많아지면 단기적으로 부담이 늘 수 있지만 이들이 금방 성장해 납세 등 의무를 이행하면서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은 출산율 제고 대신 이민 정책 등을 통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풀어가고 있지만 이주민을 받은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출산율 목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고 우려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