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도 최대 민간투자 프로젝트 현장 방문, 힘 실어
당국 부인하지만 '좌편향' 우려는 여전…무역전쟁 속 민영기업 '좌불안석'
시진핑 "민영기업 쫓아내지 않아"… '국진민퇴 논란' 종지부
중국에서 사영 경제의 바탕인 민영기업을 서서히 퇴장시키고 국영기업을 역할을 늘린다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민영기업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피력하면서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28일 중국중앙(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랴오닝성의 민영기업인 중왕(忠旺)그룹을 시찰하면서 "우리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공유제 경제를 발전시켜나가겠지만 마찬가지로 조금의 동요도 없이 민영기업 및 비공유제 경제를 지지하고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혁개방 이래 당 중앙은 줄곧 민영기업에 관심을 두고 지지·보호해왔다"며 "우리는 민영기업을 위해 좋은 법치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영업 환경을 더욱 좋게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2인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중국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 프로젝트인 저장성 저우산(舟山) 석유화학기지 건설 현장을 찾아가 시 주석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그는 "당신들의 프로젝트는 민간의 것으로 투자금은 당신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강조하면서 현장의 기업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중국 정부 홈페이지인 정부망은 "현재 국내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투자 증가율이 둔화하는 가운데 리커창 총리의 이번 민간 최대 석유화학 프로젝트 현장 방문은 국내외에 최대한의 개혁과 개방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지도 하에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채택하면서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근간인 공유제를 유지하면서 보충적으로 사영 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금융 칼럼니스트인 우샤오핑(吳小平)이 인터넷에 '중국의 사영기업은 이미 공유경제의 발전을 위해 역할을 다했다.

이제는 서서히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실제로 이 같은 주장이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급속히 확산했다.
시진핑 "민영기업 쫓아내지 않아"… '국진민퇴 논란' 종지부
우샤오핑은 "사영 경제의 임무는 공유경제의 획기적 발전에 협조하는 것이며 현재 이미 초보적으로 (임무를) 완성했다"면서 "사영 경제가 더는 맹목적으로 확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의 추샤오핑(邱小平) 부부장이 최근 한 공개 포럼에서 민영기업의 '민주 관리'가 강화되어야 한다면서 "직원들이 기업 관리에 공동 참여하고, 발전의 성과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언급을 해 당·정의 민영기업 개입 확대에 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시 주석의 이번 발언은 최근 중국 경제계에 큰 불안을 불러일으킨 국진민퇴 논란을 확실히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리 총리도 지난 19일 하계 다포스포럼 기조연설에서 "민영 경제 발전을 지지하는 정책을 진일보 실천해나갈 것"이라며 "민영 경제 발전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한편 민영 경제 진입 영역을 확대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잇따라 민영기업, 사영 경제 보호 메시지를 강력하게 발신한 것은 그만큼 중국에서 국진민퇴가 실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컸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응해 중국이 개혁개방 및 대외 개방 확대를 공언하는 가운데 옛 사회주의 체제로 회귀하자는 '국진민퇴' 주장이 고개를 드는 것은 현 지도부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중국어 뉴스 사이트 둬웨이(多維)는 "최근 많은 이들이 1950∼60년대 사영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개조시킨 마오쩌둥 시대의 경제 정책을 떠올린다"며 "심지어 중국이 '2차 사회주의 개조 시기', '마오쩌둥주의 극좌 세력 부흥기'를 맞았다고 단언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둬웨이는 우선 극좌 마오쩌둥주의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 핵심 지도부와 거리가 멀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책임 있는 당국자가 아닌 우샤오핑 같은 인물이 제기한 '국진민퇴' 제안은 중국 지도부의 실제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가운데 사회 전 분야에서 공산당의 '지도' 원칙이 강조되면서 중국에서 '좌경화'에 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실제로 경제 영역에서 민영기업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 "민영기업 쫓아내지 않아"… '국진민퇴 논란' 종지부
시 주석 집권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되자 국영 기업보다는 민간 기업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지적이다.

중국 경기의 하강 추세 속에서 미중 무역전쟁 파장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면서 민영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최근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비율도 급증하는 추세다.

또 영국 BBC방송은 최근 중국 국유자본이 대규모로 민간기업에 수혈되면서 민간 재계에서 공포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정보 제공 업체 차이신(財新)은 중국 증시에 상장된 민간 기업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20개사가 국유자본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마침 이런 가운데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진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 안팎에서는 그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조기 은퇴'라는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등 온갖 억측도 무성했다.

둬웨이는 "우샤오핑의 말은 이러한 사회의 불안감을 포착한 것"이라며 "그의 발언이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한 것은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담하게 사회 속의 잠재적인 공포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