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들은 무너졌고,우즈는 차가운 평정심 속에서 조용히 타올랐다.

23일 3타 차 단독 선두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챔피언십(총상금 900만달러·우승상금 162만달러) 4라운드에 나선 타이거 우즈(43)는1번홀(파4)에서부터 버디를 잡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드라이버로 페어웨이를 지킨 뒤 164야드가 남은 거리에서 아이언으로 홀 2.5m앞에 공을 정확히 가져다 놨다. 오르막 퍼팅이 홀컵 정중앙에 그대로 꽂혔다. 그린을 겹겹이 메운 갤러리가 모두 일어나 열광했다.

2번홀(파3)을 파로 잘 막은 우즈는 3번홀(파4)에서도 파를 지킨 뒤 4번홀(파4)에서 3m가 넘는 긴 파퍼트를 남겨 첫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우측으로 밀린 게 정확한 그린 공략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교한 퍼트로 위기를 넘겼다. 퍼팅부진에 시달리며 한 때 말렛퍼터를 잡았다 다시 돌아온 블레이드 퍼터가 스팀프피터 빠르기 12피트(4.0m)를 넘는 유리알 그린 위에서 훌륭한 궁합을 만들어냈다.

우즈의 초반 기세에 눌린 듯, 동반자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오히려 파를 놓치면서 타수 차는 5타 차로 벌어졌다. 한 홀 앞서 경기를 시작한 ‘1000만달러 경쟁자’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는 4번홀까지 파행진을 벌이며 2위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5번홀(파4)에서 4m짜리 파퍼트를 놓치며 우즈로부터 5타 차로 멀어졌다. 우즈가 독주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투어챔피언십 우승과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우승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둘 다 우승하면 1162만달러(130억원)의 잭팟이 터지는 일.

5번홀에서 동반 경기자인 매킬로이가 흔들렸다. 티샷 실수에 이은 보기를 내주면서 역시 뒷걸음질을 쳤다. 우즈와 로리의 타수 차는 7타까지 벌어졌다. 우즈는 4m짜리 버디 퍼트가 아깝게 왼쪽으로 스쳤을 뿐, 타수는 잃지 않았다. 우즈의 우승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6번홀(파5). 우즈가 기회의 홀에서 오히려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세컨드샷이 토핑이 나면서 그린 뒤 깊은 버뮤다러프로 들어간 것. 내리막 브레이크를 의식한 탓인지, 어프로치샷과 퍼트까지 모두 짧았다. 하지만 1.5m짜리 까다로운 훅라이 내리막 퍼트를 홀속으로 침착하게 밀어넣어 위기를 넘겼다.

7번홀(파4)에서 우즈는 우드 티샷을 했다. 우승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 여기서 5m짜리 버디 퍼트를 놓쳤지만 파를 세이브하며 선두를 이어갔다.

가장 까다로운 홀로 꼽힌 8번홀(파4)에선 티샷이 벙커에 빠지며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왼쪽 워터해저드를 피하려다 우측으로 공이 밀렸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린에 공을 잘 올려 파세이브를 해냈다. 어려운 9번홀(파3)까지 파를 잘 지킨 우즈는 전반을 1언더파로 깔끔하게 마쳤다. 반면 매킬로이는 전반에만 보기 3개,더블보기 1개,버디 1개로 4타를 잃었고,로즈도 보기 2개,버디 1개로 1타를 내주며 미끄럼을 탔다. 우즈의 5타 차 단독 선두는 굳건한 순항을 이어갔다.

후반. 10번홀(파4)에서 첫 보기가 나왔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며 레이업을 해야 했다. 61야드를 남기고 친 세 번째 웨지샷이 길었다. 2.5m짜리 파 퍼트가 홀컵 우측에서 멈췄다. 추격의 틈을 내주는 듯했다. 하지만 앞서 경기하던 로즈도 11번홀(파3)에서 보기를 내주는 바람에 타수 차는 다시 5타 차로 복원됐다.

11번홀(파3),12번홀(파4)을 파로 잘 막은 우즈는 13번홀에서 우드 티샷을 한 뒤 두 번째 샷을 홀 4m앞에 떨궈 이날 두 번째 버디를 잡아냈다. 다시 13언더파. 그러는 사이 티샷이 흔들린 로즈가 14번홀(파4)에서 보기 1개를 추가하며 우즈의 우승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매킬로이는 후반에도 한 타를 더 잃어 경쟁자군 가운데 가장 먼저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우승고지로 진군하는 우즈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즈의 최대 위기는 15번홀(파3) 찾아왔다. 티샷 뒤땅으로 짧게 날아간 공이 해저드에 빠질 뻔 한 것. 운이 따랐다. 그린에지 러프가 공을 잡아줬다. 보기로 막았다. 반면 페덱스컵 우승 경쟁자인 로즈는 16번홀(파4) 티샷이 왼쪽으로 감겨버렸다. 티샷 불안이 세 번째 보기로 연결됐다. 로즈는 평정심을 잃은 듯 티샷 이후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로리 역시 퍼터를 휘두르며 자신의 샷과 퍼트를 자책했다.

우즈를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를 위협할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로즈도, 매킬로이도 아닌 빌리 호셜(미국)이 최후 변수로 떠올랐다. 이날 시나브로 4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러 9언더파로 소리없이 경기를 먼저 끝낸 것이다. 호셜과의 격차는 3타 차.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우즈의 16번홀(파4) 티샷이 문제가 됐다. 왼쪽으로 감기며 러프에 들어간 것이다. 안전하게 레이업을 시도해 세 번째샷으로 그린 공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샷이 길게 그린 엣지에 떨어지면서 어려운 파퍼트가 남았다. 파퍼트가 홀컵 오른쪽에 멈춰섰다. 세 번째 보기. 호셜과의 격차가 2타 차로 좁혀졌다. 하지만 우즈는 17번홀(파4)에서 페어웨이와 그린을 놓치고서도 파를 지켜냈다. 앞서 경기하던 로즈는 18번홀(파5)에서 천금같은 버디를 잡아내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위를 확정지었다. 우즈가 가져갈 뻔했던 1000만달러의 보너스가 로즈의 것으로 돌아갔다. 유럽투어 1인자이자,세계랭킹 1위인 로즈와 미국을 대표하는 ‘돌아온 황제’ 우즈가 사이좋게 우승컵을 나눠갖는 상황이 펼쳐졌다.

우즈는 마지막 18번홀에서 티샷을 페어웨이에 올렸다. 그제서야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졌지만 홀 2m앞으로 빼냈다. 2퍼트면 우승. 첫 번째 퍼트를 홀컵 옆에 붙인 우즈는 가볍게 탭핑 파를 잡아내며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2013년 8월 이후 5년만의 우승,1876일만에 완성된 황제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갤러리가 모두 기립하며 돌아온 우즈를 반겼다. 우즈는 우승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의 힘든 여정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