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76)을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말이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다.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인 그는 27세 때인 1969년 서울대 음대에 최연소 임용되었고 2005년엔 여성 최초로 서울대 음대 학장을 맡았다. 그의 삶을 두고 ‘대한민국 여성 음악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육자로서 40여 년을 살아온 그가 올해 완전히 다른 분야의 리더로 변신했다. 자신이 10년간 비상근 이사로 몸담았던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3대 이사장으로 작년 12월 취임했다. 같은 달 서울대 총동창회장에 선임돼 사상 최초 여성 동창회장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신 이사장을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 인근 중식당 마오에서 만났다. 그가 한 달에 한두 번 지인들과 찾는 곳이다. 식당에 들어서자 중국풍 장식과 인테리어는 물론 중국 본토에서나 느낄 수 있는 진한 중국 음식 향기가 반겼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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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스승 잘 만난 운 좋은 음악가”

중식당 마오와 신 이사장의 만남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이 지역에 많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하나둘 망하더니 어느날 이 식당이 새로 생겼어요. 베이징덕이 비싸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와서 먹어 보니 생각보다는 저렴하더라고요.” 길 건너편에는 그의 모친이 설립한 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인 모차르트홀이 있다. 2004년 문을 연 뒤 15년 동안 이곳에서 송년음악회와 크고 작은 공연을 열고 있다. 제자나 동료들과 오가며 마오에 자주 들르게 됐다고 한다.

노릇하게 구워낸 베이징덕과 꿔바러우(돼지고기 튀김), 고추마늘소스를 넣은 가지볶음이 테이블에 올랐다. 그는 기자들에게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맛보라고 재차 권했다. 손님들 대접할 음식이 식지 않을까 무던히 신경 쓰던 어머니 같은 정(情)이 느껴졌다. 베이징덕은 씹자마자 바삭한 식감이 올라왔고 씹는 내내 살코기의 육질이 부드럽게 입안을 감쌌다. 꿔바러우는 토마토소스를 덧입어 느끼하지 않았고 가지볶음 역시 고추와 마늘향을 더해 매콤한 맛이 좋았다.

신 이사장은 유독 ‘최초’가 많은 자신의 이력에 대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운 좋은 시절을 보낸 덕분”이라고 겸양했다. 충북 옥천여중 교장이던 아버지 덕에 미군 구호물자로 교장 관사에 들여놓은 낡은 피아노를 접할 수 있었다. 부모님 권유로 시작한 피아노였지만 재능은 금세 나타났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이화여고 교장이던 신봉조 선생과 서울예고 교장인 임원식 선생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를 열었다. 도전장을 낸 열 살짜리 ‘꼬마’ 신수정은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함께 입상한 이들은 미국 보스턴대 음대 교수를 지낸 피아니스트 한동일,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낸 피아니스트 이경숙 등 쟁쟁한 인물이었다.
이후에도 그에겐 스승 운이 계속됐다. “1953년 환도 후 잠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1920년대 독일 베를린에서 공부한 이애내 선생님을 만났죠. 아주 예뻐해주셔서 청주에 내려온 뒤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로 레슨을 다녔습니다.” 뛰어난 스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서울 이화여고에 입학원서를 내려 하자 서울예고 교장이던 임원식 선생이 장학금을 주며 그를 예고에 입학시켰다.

이후 서울대 음대에 수석 입학했고 3학년이던 1961년 제1회 동아콩쿠르에서도 피아노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가 됐다. 런던필하모닉, 도쿄필하모닉, 베를린체임버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불멸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 음악가들의 국내 무대에서 피아노 반주를 도맡았다.

“조성진 스승이라뇨. 민망해요”

신 이사장은 ‘조성진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조성진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마오 건너편 모차르트홀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치는 피아노 선율이 그날따라 유난히 귀에 꽂혔다. “성진이 선생님인 박숙련 순천대 교수와 인연이 있었는데 어느날 중학교 1학년인 성진이를 청소년 국제콩쿠르에 내보내겠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가르쳐봤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됐어요.” 조성진 역시 운이 따랐다. 국립대 교수는 학칙상 개인 교습을 할 수 없지만 마침 신 이사장은 서울대 음대 교수 정년을 마쳐 그런 제한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신 이사장은 조성진이 2012년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유학길에 오르기 전 5~6년간 자신의 집에서 직접 가르쳤다. 조성진은 그후 2015년 세계 3대 피아노콩쿠르로 불리는 쇼팽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하지만 ‘조성진의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그는 낯설어했다. “성진이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내가 따라오는 게 좀 민망해요. 절대로 제가 키운 게 아닙니다. 음악가에겐 재능이라는 타고난 유전자(DNA)가 절대적인 거고 집념과 더불어 노력이 더해져야 하죠. 선생은 그저 다리를 놓는 것뿐입니다.” 쇼팽콩쿠르 우승 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조성진을 자랑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조성진의 능력을 더 치켜세우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메디치家’ 같은 후원자 늘어야

신 이사장이 대학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할 당시 한국인 유학생은 그를 포함해 5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만 1200명의 한국인 음악인이 공부하고 있다. 유학을 마친 그는 한국에 돌아와 강사생활을 거쳐 1년 뒤 서울대 최연소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음대 전임강사 8명을 뽑는 공고를 내면 박사만 80여 명이 지원한다고 한다. 넉넉한 집안이 아닌 이상 이제는 무작정 음악을 시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음악이 좋아서 헝그리 정신으로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안쓰럽고 애처롭습니다. 덮어놓고 시키기엔 힘든 시대죠.”

자연스럽게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야기로 넘어왔다. 2007년 설립된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200억원의 연간 예산 중 30% 내외인 50억~60억원을 문화예술 분야에 쓰고 있다. “소외계층 지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재단이에요. 10년 동안 비상근 이사로 있으면서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을 따로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재단 간섭도 없고요. 독립적이라는 방증이겠죠.”

피아니스트 출신답게 그의 바람은 문화예술인 지원 강화로 모아졌다. 세계적인 명작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이 뒤를 받쳐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귀족들이 후원해 준 것처럼 예술인들에겐 든든한 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 이사장도 대학 졸업 후 음악을 계속하고 싶던 그때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의 장학금을 받아 빈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조성진 역시 포스코 직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자랄 뻔했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여러 후원자의 힘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우리 재단은 정몽구 회장의 인재 양성 및 문화예술 진흥, 사회공헌 철학에 따라 많은 사업을 하고 있어요. 이 중 예술은 다른 어느 곳 못지않게 후원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가끔 ‘성진이도 우리 재단이 키워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소외계층 지원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우리 재단이 문화소외계층이나 차상위 계층에 속한 어려운 예술인 지원도 점차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신수정 이사장 약력

△1942년 충북 청주 출생
△1963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 졸업
△196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아카데미 졸업
△1969년 서울대 음대 임용
△1974년 미국 피바디 음대 대학원 졸업
△1989년 경원대 음대 교수, 학장 역임
△2000년 서울대 음대 교수 역임
△2005년 서울대 음대 학장 역임
△2007년~ 대관령국제음악제 운영위원장
△2009년~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18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2007년 설립된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인사재 8500여 억원을 출연해 세운 사회공헌재단이다. 지난 10년간 1389억원을 소외계층 지원에 쓰며 54만 명에게 희망의 씨앗을 전파했다. 법규상 의무사항과 납세 의무를 철저히 이행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받는 등 사회공헌 공익법인의 롤모델로 꼽힌다.

2015년부터는 강원 평창군 계촌마을을 ‘클래식 마을’로,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과 전촌마을을 ‘동편제 국악마을’로 선정해 매년 문화예술축제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신수정 이사장의 단골집 마오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4번 출구에서 대법원을 끼고 서울고 방향으로 800여m 내려오다 보면 중식당 마오(MAO) 간판이 보인다. 오리고기의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베이징덕 전문점이다.
식당 이름은 마오쩌둥의 ‘마오’에서 땄다고 한다. 중국 유명 식당에서 데려온 베테랑 요리사들이 현지 방식대로 오리를 요리한다. 얇게 썬 오리고기와 파를 바오빙이라는 밀전병에 싸 춘장과 비슷한 첨면장 소스에 듬뿍 찍어 먹는 베이징덕은 바삭하게 씹히는 고소함이 일품이다. 두반장 소스에 볶은 중국식 가지볶음과 꿔바러우(돼지고기 튀김)도 인기 메뉴다. 가지볶음은 고추마늘소스를 넣어 매콤함과 감칠맛이 일품이다. 꿔바러우는 상큼한 토마토소스를 끼얹어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베이징덕 3만8000원(小)~6만8000원(大), 꿔바러우 1만9000원, 위샹체쯔(가지볶음) 1만8000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며 휴무 없이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