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세) 박사가 안락사를 택해 생을 마감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구달 박사는 안락사를 금지하는 호주의 법을 피해 스위스로 건너가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투여받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며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의 60% 이상이 소극적 안락사에, 30% 이상이 적극적 안락사에 각각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이런 안락사 지지 경향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질수록 더 강했다.
소극적 안락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공급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 죽음에 앞서 생명을 마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존엄사'로 불리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의도적 생명단축이 아니라 기계적 호흡 등을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과 구별된다.
반면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면 적극적 안락사, 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물을 환자가 복용하면 의사조력자살에 해당한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은 2016년 7∼10월 국내 12개 병원에서 일반 국민(1천241명), 암 환자(1천1명)와 가족(1천6명), 의사(928명)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통증조절,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등 5가지 삶의 마지막 중재방식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BMJ 오픈(Open)' 온라인판 9월호에 발표됐다
논문을 보면 생존 기간 단축 가능성이 있더라도 마약성 진통제 등으로 통증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적극적인 통증조절'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83.1%, 암 환자의 88.5%, 환자 가족의 92.5%, 의사의 98.9%가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즉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88.7%, 암 환자의 88.3%, 환자 가족의 89.5%, 의사의 98.9%가 찬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않는 소극적인 안락사는 의사의 찬성 비율(77.2%)이 가장 높았으며 이어 일반인(66.5%), 암 환자(60.0%), 환자 가족(55.3%) 순이었다.
적극적인 안락사에 찬성하는 비율은 오히려 일반인(41.4%)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암 환자(38.2%), 의사(35.5%), 환자 가족(31.7%) 순이었다.
의사조력자살도 적극적인 안락사와 양상이 비슷했다.
주목되는 건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가가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예컨대 '가족에게 부담되지 않는 삶'을 가장 중요시하는 경우 적극적 안락사(1.62배)와 의사조력자살(1.61배)에 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와 달리 '의미있게 생각되는 삶'을 가장 중요시하는 하는 경우에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2.56배 많은 반면 적극적 안락사(0.73배)나 의사조력자살(0.68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가족을 돌본 경험도 소극적 안락사(0.87배)나 적극적 안락사(0.86배)보다 적극적 통증조절(1.67배)과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1.38배)에 더 무게가 실리게 하는 요인이었다.
'죽음은 고통스럽고 두렵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안락사 찬성률이 높았다. 윤영호 교수는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등은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비율이 우리보다 높은 60∼90%에 달한다"면서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은 자율성과 개인주의가 강해 안락사를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지만, 우리는 아직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서 환자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아 덜 수용적인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고 법제화도 진행 중인 유럽이나 북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안락사 논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