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품은 사각형이었다. 한국의 ‘밥공기 문화’에 맞지 않아 안 팔렸다. 둥근 모양으로 바뀌었다. 갓 지은 밥맛을 위해 2010년 쌀 도정 설비를 도입해 ‘그날 도정한 쌀’로만 밥을 짓는다. 고열·고압으로 찐 쌀을 무균 포장한 뒤 3중 재질의 그릇에 담는다. 비닐 덮개는 4중 특수 필름지다. 공기가 드나들 수 없고 100도 이상 온도에서도 성분과 외형이 안 변한다. 용기의 바닥 부분은 주름이 잡혀 있고, 아래는 오목하다. 측면은 다각형. 강도를 높이고, 조리 시 열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밥 문화를 바꾼 CJ제일제당 ‘햇반’ 얘기다. 햇반은 연 3억 개씩 팔린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이미 2억 개가 팔렸다. 국민 1인당 4개 이상을 먹은 셈이다. 이 기록까지 20년이 걸렸다.

가정간편식(HMR)은 반세기 역사의 대한민국 식품산업을 미래 첨단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동원F&B, 대상 등 대한민국 음식 문화를 이끌어온 종합식품기업들은 HMR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HMR이 4~5년 사이 급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간 기업들의 도전과 실패가 녹아 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입맛’. “국민의 입맛으로부터 신뢰를 얻기까지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식품업계는 이야기한다.
◆‘손맛’과 ‘불맛’… 핵심은 ‘좋은 재료’

한식은 HMR의 불모지였다. 재료가 다양하고 조리 과정이 복잡해 HMR 구현이 어려웠다. 한식 HMR의 핵심은 ‘손맛’과 ‘불맛’. 이를 위해 국내 식품공장에서는 수작업과 함께 혁신 기술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

CJ제일제당 논산공장에서 만든 ‘비비고 육개장’은 한식 HMR의 판도를 바꾼 제품이다. 상온 유통 국물요리의 품질을 한 단계 높여 월 매출 20억원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공장에선 육수 분말 대신 생고기로 직접 육수를 뽑는다. 호주산 소고기 양지 덩어리를 찬물에 담가 12시간 핏물을 빼고 3시간 이상 삶아 손으로 찢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고춧가루는 기름과 마늘에 볶아 풋내를 없애고, 식감을 위해 재료마다 살균·가열 시간을 달리한다. 이후 소고기미역국, 사골곰탕, 갈비탕 등으로 확대했다.

‘양반죽’에 들어가는 쌀은 고급 품종 ‘신동진쌀’이다. 동원F&B는 깨진 쌀을 고르는 설비도 개선했다. 국자로 죽을 저어 만드는 전통 방식을 따라 특수 살균기를 도입, 담을 때 흔들어 주면서 용기에 눌어붙지 않도록 했다. 냉동밥 시장에서 대상 청정원은 ‘밥물이 다르다’를 내세운다. 황태 우린 물, 표고버섯 우린 물, 강황 우린 물 등으로 밥을 짓는다. 이남주 CJ제일제당 수석연구원은 “소비자 입맛의 수준이 올라가 재료와 제조 공정 모두 차별화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맛 살리는 패키징 과학

HMR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에 없었던 재료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원F&B는 전자레인지에 30초만 데우면 연기와 냄새 걱정 없이 간편하게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는 ‘동원간편구이’ 고등어와 가자미를 만들고 있다.

까다로운 돼지 부산물도 HMR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막창, 곱창, 닭발, 돼지껍데기, 근위, 오돌뼈 등 술안주가 될 수 있는 부산물로 대상은 ‘안주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불에 구운 맛을 내기 위해 직접 재료에 불을 쏘는 직화공정을 설계했고, 볶음 요리는 커다란 솥에서 볶는 공정을 도입했다.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냉동밥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CJ제일제당 냉동볶음밥은 국내 냉동밥 중 유일하게 불맛을 내는 ‘화미솥’을 사용한다. 180도의 고온에서 밥과 재료를 볶아내는데 솥 내부의 프로펠러 모양 주걱이 재료를 빠르게 섞는다. 풀무원도 가마솥 직화 방식으로 쪄낸 밥알 하나하나를 개별 급속 냉동 공정으로 만든다. 오뚜기는 스크램블 에그를 더 넣은 방식을 쓴다.

패키징 연구도 활발하다. 대상 청정원 ‘휘슬링쿡’은 뚜껑에 쿠킹밸브가 부착돼 조리가 끝나면 ‘휘~이~’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나도록 포장을 설계했다. 롯데푸드는 ‘쉐푸드 육교자’ 만두 제품에 포장지가 부풀면서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 스팀팩 포장을 개발해 적용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