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최인훈이 남긴 말… "'박근혜 탄핵'은 현대사 명문장"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노벨문학상 소동 목불인견", "'광장' 이명준 자살은 도피 아냐"
    최인훈이 남긴 말… "'박근혜 탄핵'은 현대사 명문장"
    지난 23일 별세한 최인훈(1934∼) 작가는 생전에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인상적인 말을 많이 남겼다.

    지인들은 그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 얘기를 시작하면 주저함 없이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밝히며 유려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말을 이어나갔다고 전한다.

    특히 북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 월남하는 등 남북 분단 과정을 온몸을 통과하며 '광장' 같은 작품을 쓴 그는 마지막까지 남북관계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보다 재통일이 더 위대하다.

    처음부터 통일되어 있어 끄떡없는 것보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했다가 여태까지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렇게 다시 한국이 통일된다면 참 위대한 일이다.

    마치 삼단뛰기라는 운동의 원칙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뜀박질이라도 세 번째 한 것이 더 위대하다.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말의 진정한 가치다.

    "
    최인훈이 남긴 말… "'박근혜 탄핵'은 현대사 명문장"
    그는 '광장' 등 불후의 명작을 쓴 작가로서 여러 형태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에도 평생 문단, 속세와 거리를 두면서 작품 집필에만 전념했다.

    그의 사회 활동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25년간 몸담으며 후학을 양성한 일이 전부다.

    김운경, 채호기, 이창기, 이능표, 이나미, 김기우, 황인숙, 조용미, 신경숙, 황선미, 장석남, 박형준, 이병률, 이진명, 함민복, 이원, 강영숙, 하성란, 백민석, 편혜영, 조경란, 천운영, 윤성희, 최제훈 등 시인·소설가와 방송작가 노희경, 김은숙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는 어지러운 현대사를 관통하며 직접 거리의 민주화 시위나 문인들의 저항 운동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 깊은 관심을 뒀다고 후배·제자들은 말한다.

    강영숙 작가는 "1988년 입학했는데, 당시 학교가 남산에 있어 근처 명동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학생들이 참여하려고 수업 중 자주 뛰쳐나갔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기꺼이 학생들을 내보내 주셨다"고 돌아봤다.

    빈소에서 만난 다른 제자인 출판기획자 류인호 씨는 "작년에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서 우리 현대사의 최고 명문장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주문('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민중주의를 이룬 사건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최인훈이 남긴 말… "'박근혜 탄핵'은 현대사 명문장"
    언론과의 접촉이 드물었던 그는 2012년 한겨레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대신 바다로 뛰어드는 결말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바다로 뛰어내린 이명준의 선택을 두고 왜 자살했느냐 도피가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지만, 현실에서의 도피와 작품 속 도피는 다른 것입니다.

    이명준은 죽은 다음에도 최일선에서 바다 밑 보초를 서고 있는 셈이죠. 백골이 되어서도, 죽은 후에도 조국을 사랑하고 철학을 사랑하고 있달까요.

    "
    이는 작가 자신의 분신으로 해석되는 인물 이명준처럼 그 역시 죽은 후에도 '조국을 사랑하고 철학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종종 거론됐지만, 한국 언론이 노벨문학상에 집착하는 행태에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2007년 11월 자신의 희곡을 올린 연극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문학이 서양 문학에 대한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씻어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노벨문학상에 매달리는 것은 추태"라며 "매해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만 되면 온 나라가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 소설가, 시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당시 그는 우리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는 이유는 역량 있는 작품을 써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인데 이를 짚어주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관건은 한국 현대 문학의 번역 수준이 어디까지 왔느냐를 점검하는 것이다.

    좋은 번역 없이는 절대 노벨문학상에 근접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음악의 '절대음감'처럼 언어에도 '절대감'이라는 게 있다.

    번역을 할 때 얼마나 '절대감' 있게 번역했느냐를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인훈이 남긴 말… "'박근혜 탄핵'은 현대사 명문장"
    /연합뉴스

    ADVERTISEMENT

    1. 1

      오늘은 '지구촌 BTS 제너레이션' 탄생 알리는 날

      광화문은 언제나 역사의 무대였다. 오래전에는 왕의 길이었고, 개발연대에는 눈부신 발전의 상징이었다. 2002년 광화문은 붉은 무대가 됐다. 붉은 옷을 입고, 같은 함성을 지르는 ‘월드컵 제너레이션’의 탄생이었다. 세계는 대한민국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 광화문은 또 다른 무대로 바뀌었다. 민주주의의 무대였다.그리고 2026년 3월 21일. 광화문은 보랏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계의 무대가 된다. 방탄소년단(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콘서트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2002년의 붉은빛은 보랏빛으로 바뀌고, 한국인은 전 세계인으로 바뀐다. 경제 발전, 민주주의의 상징에서 광화문이 새로운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로 변신하는 그날이다.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저마다의 나라로 흘러들어 간다. 지구촌 문화 권력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문화 강국으로의 여정은 길고 험했다. 한국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미국에 진출한 것은 67년 전이다. 그들은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를 뛰어넘는 인기를 끌었다. 이후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변곡점을 맞는다. 2012년 ‘강남스타일 신드롬’이다. 유튜브 세상의 최대 수혜자가 한국이 될 것임을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까.K팝이 세계 시장 정복을 준비하는 사이, K드라마와 K무비도 줄기차게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반도체의 나라, 조선과 자동차의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스스로의 힘을 믿지 못했다. 문화강국이 된다는 것에 어리둥절해했고, 한류를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흐름은 도도했다. K컬처 열풍은 더 거세졌다.

    2. 2

      당신의 스마트폰이 지구 여섯 바퀴를 돌아온 이유 [책마을]

      우리는 매일 물건을 쓴다.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지를 쓴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 묻는 일은 드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제조업연구소 소장 팀 민셜이 쓴 신간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물건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오는가.” 이 단순한 물음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보게 만든다.책이 보여주는 제조업의 세계는 거대하고 정교하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수천 리터의 물이 쓰이고, 스마트폰은 수많은 국가를 거쳐 지구를 몇 바퀴나 도는 여정을 지나 손에 들어온다. 케이크, 화장지 같은 일상용품부터 비행기와 의약품까지, 거의 모든 물건이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생산·운송·소비된다. 이 시스템은 너무나 잘 작동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는다. 저자가 이를 “하수처리 시스템처럼 보이지 않는 필수 인프라”라고 표현한 이유다.그러나 문제는 이 정교함이 동시에 취약성이라는 점이다. 책은 현대 제조업이 추구해온 ‘저비용·고효율’ 전략이 초래한 구조적 약점을 낱낱이 짚는다. 2020년 코로나19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화장지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공장이 멈춘 것도 아닌데 왜 휴지가 없느냐”고 의아해했다.원인은 ‘아웃소싱’과 ‘재고 최소화’에 있었다. 사무실과 공공시설에서 쓰이던 상업용 화장지 수요는 줄고, 가정용 수요는 급증했지만 생산 라인을 즉각 전환하기는 어려웠다. 상업용과 가정용 제품은 규격과 포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

    3. 3

      대로변 두 여성 난투극…"이긴 쪽 고르겠다"는 양다리男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두 여자가 마주쳤습니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양다리를 걸친 여성들이었습니다. 한 명은 피카소와 먼저 만나 아이까지 낳은 여인. 다른 한 명은 피카소의 새 애인이었습니다.“내 남자 곁에서 썩 꺼져!” “헛소리 하지 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밀치고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카소는 이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낄낄 웃으며 말했습니다. “둘이 싸워서 이긴 사람한테 갈게.” 훗날 피카소는 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며 말했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기억이었지.”현대미술의 신(神)과 같은 존재, 천재 화가 피카소. 그의 삶은 이처럼 다른 여성들의 사랑과 눈물, 분노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가십거리로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연애사는 그의 작품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연인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어 그림을 완전히 바꿨고, 변화무쌍한 화풍을 통해 위대한 작가가 됐습니다. 지난주 1편에서 이어지는, 그의 사랑과 그림 이야기. 발레리나 손을 잡고 상류 사회로여자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피카소는 오래 슬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1917년 발레단의 무대 장식과 의상 작업을 맡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간 그는, 두 번 사랑에 빠졌습니다. 한 번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원작 명화에 푹 빠진 것. 다른 하나는, 발레단의 발레리나였던 올가 코클로바와의 사랑이었습니다.우크라이나 명문가 출신인 올가는 피카소보다 열 살 연하의 우아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와 피카소는 서로 만나자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