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용어인 파(par)는 라틴어로 ‘동등한, 탁월한’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골프 장비의 진화와 획기적으로 발전한 선수들의 기량 때문에 파의 의미가 퇴색했으나, 예전의 파는 지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파의 가치는 주로 메이저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메이저대회 US오픈에서 우승한 브룩스 켑카(미국)의 스코어는 1오버파였다. 23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앵거스의 카누스티 골프링크스(파71·7402야드)에서 끝난 최고(最古)의 골프대회 디오픈 역시 딱딱한 페어웨이와 강풍, 유리알 그린으로 일찌감치 ‘파와의 전쟁’을 예고했다. 우승 트로피와 우승상금 189만달러(약 21억4609만원)는 파의 가치를 가장 잘 지켜낸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에게 돌아갔다.

몰리나리는 이번 대회 내내 버디가 아니라 파를 목표로 경기했다. 그의 의도는 스코어카드에서도 드러난다. 몰리나리는 우승을 위해 버디를 잡아야 하는 이날도 13번홀(파3)까지 모두 파를 기록했다.

18홀 내내 이어진 몰리나리의 인내는 그 가치를 증명했다. 그는 이날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경쟁자들이 보기나 더블보기로 무너지는 동안 보기 없이 버디만 2개를 잡아 2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8언더파 276타로 경쟁자들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이탈리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몰리나리는 “(카누스티 골프링크스에서) 주말을 보기 없이 지나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고 스스로 감탄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잰더 쇼플리, 케빈 키스너(이상 미국)가 6언더파 278타로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미국)는 이날 5타를 잃고 최종합계 4언더파 280타 공동 9위에 머물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