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의 하천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골드러시’는 오래가지 못했고 실패한 환상으로 끝이 났다.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의 하천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골드러시’는 오래가지 못했고 실패한 환상으로 끝이 났다.
1848년 1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당시 멕시코 영토이던 알타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를 포함한 지역)의 한 개울에서 금 조각이 발견됐다. 그다음 수요일에 멕시코전쟁을 끝내는 강화조약이 체결돼 이 땅의 모든 금은 그 즉시 미국 소유가 됐다. 황금의 땅 엘도라도,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강바닥에서, 흙에서, 나무뿌리 사이에서 금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1주일에 1㎏ 이상의 금을 찾는 경우도 흔했다. 이후 몇 년간 미국 젊은 남성의 5%가 황금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찬양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 생산량은 급감했고 불운한 사람이 행운을 만난 사람에 비해 10배, 100배 늘어갔다. 이른바 ‘골드러시’의 말로였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애초 청교도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인들도 그랬다. 1600년대 영국의 개척민 지원자들이 신대륙 원정에 나선 것은 금에 대한 맹목적 집착 때문이었다. 제임스 1세 영국 국왕은 두 개의 민간기업에 식민지 건설 사업권을 주고 제임스타운을 건설했지만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의 건설 과정에 대해 사람들은 필그림과 메이플라워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제임스타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시도나 실패한 베타 테스트쯤으로 치부하며 감춰버린다.

[책마을] 음모론·엘도라도·종말론… 美는 왜 판타지에 빠졌나
미국의 저명한 문화비평가인 커트 앤더슨은 《판타지랜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미국을 만든 이들은 허황한 꿈과 환상에 사로잡힌 자들과 타협을 거부하는 청교도 분리주의자, 즉 종교적 광신자 집단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날 미국 사회가 과학과 객관적인 사실을 기각해버리는 대신 온갖 의견과 억측, 환상을 좇는 유사현실에 이르게 됐다며 그 연원을 찾아 역사를 되짚는다.

우선 저자의 현실 진단은 냉정하고 충격적이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이 현실감각을 상실해 비과학적인 허위 사실이나 거짓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초자연주의, 예언, 종교적 유사과학, 음모론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믿는 미국인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3분의 1 이상은 지구온난화를 과학자와 정부, 언론인의 농간으로 믿는다. 또 미국인 3분의 2는 진짜 천사와 악마가 이 세상에서 활약 중이라 믿고, 3분의 1은 최근에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고 믿는다. 4분의 1은 전직 대통령(버락 오바마)이 적그리스도였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 관리들이 9·11 테러에 가담했다고 믿는 사람도 5분의 1이나 된다.

미국은 한마디로 개인들의 주관적 신념만 강조되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객관적 사실은 외면해버리는 사람들로 이뤄진 ‘환상 기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 미국 사회를 저자는 ‘판타지랜드’라고 이름했다.

저자는 그 근원을 왜곡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찾는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개인에게로 돌려놨다. 이후 가톨릭에서 벗어나 새로 형성된 신교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종파를 낳게 됐고, 종파 간 대립도 격렬해졌다. 그중 하나가 영국에서 등장한 청교도 운동, 그중에서도 타협을 거부한 청교도 분리주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물려준 복음주의 개신교와 지적 자유를 이상으로 삼은 계몽주의가 혼합되면서 생각과 사상의 자유가 중시됐고, 그 도가 지나쳐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을 찾아 건너온 투기꾼과 모험적 사업가, 사기꾼과 허풍쟁이가 가세해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이 모호하게 됐다는 진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환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이다. 이 균형이 유지됐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경제적, 문화적 번영이 가능했다. 세계 시장을 장악한 미국 엔터테인먼트산업은 판타지에 열광하는 미국인의 특성이 낳은 산물이다. 하지만 균형이 깨지면서 종교와 유사종교, 환상이 이성과 합리주의를 압도하게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경제의 비이성적 과열을 낳은 배경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환상주의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은 판타지랜드의 확장과 강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인터넷 환경에서 대중은 거짓 정보에 대한 면역력을 잃고 가짜뉴스에 탐닉한다.

저자는 판타지랜드의 정점을 찍은 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거짓말과 왜곡을 일삼는 것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국인의 특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이용한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미국을 다시 현실에 기초한 나라로 만들려면 꽤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희망적인 소식은 미국이 지금 판타지랜드의 정점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