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이 도전적 연구에 집중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61·사진)가 9일 제6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며 내놓은 포부다. 연구재단은 2009년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개 기관이 통합해 출범했다. 연간 5조원에 이르는 기초·원천분야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배분하고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기관이다. 노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
노 이사장은 1975년 서울대 미생물학과에 입학해 자연대를 수석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대에서 1984년 분자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귀국해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로 임명됐다.
노 이사장은 평생 연구에 몰두하면서 서울대 법인 이사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맡는 등 학교 행정과 국가 연구 정책 수립에도 기여했다. 여성 과학자들의 유리 천장을 깨는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04년 서울대 연구처장에 임명됐는데 서울대가 본부 주요 보직에 여성 교수를 임명한 것은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구처장에 재직하던 2005년에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태 때 서울대 조사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차분한 어조와 절제된 설명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가 조사에 미적거리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서울대는 못 믿어도 노정혜 선생님은 믿을 수 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노 이사장은 지난해에는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288명의 성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 전 본부장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으로 일하며 황 전 교수의 연구 문제를 알면서 책임을 외면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정부가 현 정부의 과학기술계 실세로 불렸던 박 전 본부장을 물러나게 한 그를 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선임한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노 이사장은 최근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발굴하는 학회연합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 이사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한국연구재단이 우리나라 기초·원천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미래지향적 연구생태계의 체질 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대학과 연구기관, 연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플랫폼 역할과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