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한 단편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설명하고 있는 최은영 작가.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최근 출간한 단편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설명하고 있는 최은영 작가.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본격적으로 소설을 배우고 쓰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등단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제5·8회 젊은작가상 등을 휩쓸었다. 2년 전 출간한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재능 있는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소설집’(김영하 작가)이라는 평과 함께 10만 부 넘게 팔렸다. 최은영 작가 이야기다.

그가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은 올여름 쏟아지는 소설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집에 실린 7편의 단편은 사랑보다는 우정, 30~40대보다는 10~20대 이야기, 관계의 회복보다는 단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읽힌다.

최은영 작가 "사람을 늘 쓰임새로만 평가… 인간은 외롭고 처연한 존재"
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최 작가는 “30대 중반이 돼서도 꿈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때가 10~20대 초반”이라며 “그런 점에서 자꾸 그때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엔 흔했던 선생님의 폭력이나 엄격한 규율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예민한 탓’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죠. 나를 비난하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저를 많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 상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수록된 단편 ‘고백’의 구절에도 등장한다. 열여덟 살 진희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주나와 미주에게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이후 그들에게서 경멸의 눈빛과 냉담한 반응을 동시에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주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진희는 그날 이후로 자살하고, 남겨진 이들은 큰 죄책감 속에 살아가게 된다. 미주가 느꼈던 셋 사이의 행복과 안도는 상대의 외로움을 모른 척했을 때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저 사람은 상처주지 않을 좋을 사람’이라고 판단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 힘겹게 맞춰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늘 해요. 어떤 관계 속에서 내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죠. 정말 친했다지만 주나나 미주가 진희라는 아이에 대해 깊이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해 알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 남녀가 한 시절을 공유하며 의지하다 끝내 멀어져가는 ‘모래로 지은 집’, 욕심과 위선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는 ‘그 여름’에서 작가는 ‘인간은 외롭고 처연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대우받기보다 그 사람이 지닌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이다 보니 갈수록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래도 사람이 사람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최 작가에게 글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가는 윤리를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을 쓰다 보면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우쭐한 마음을 먹기 쉬워요. 나의 추한 몰골을 계속 거울로 바라보며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