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은 짐작할 만하다. 정부 당국은 연초 비트코인 투기 논란 후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의 ‘분리’를 택했다. 학을 뗐다고 할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랐다고 할까. 의식적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별개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움직임은 당연한 것이다. 당국 입장에선 기존 통화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불확실성이 커 보이는 암호화폐에 명운을 걸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하는 행보가 정부에게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진공 상태, 혹은 무균실 형태의 블록체인 기술 발전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가 하는 데 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 실제로 구동하게끔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대다수 기술이 그렇듯 어떤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시장의 필요(needs)에 의해서지, 기술 자체의 우수성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정부도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발전전략에 △축산물 이력관리 △개인통관 △간편 부동산 거래 △온라인 투표 △국가 간 전자문서 유통 △해운 물류 등 6가지 시범사업 추진을 명시했다. 모두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하거나, 도입되면 좋은 분야지만 암호화폐보다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하긴 어렵다.
물론 각 시범사업 소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관세청·국토교통부와도 협업이 필요할 터이다. 그런데 정작 암호화폐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와의 협력 사업이 없다. 가장 긴밀하고 중요한 분야는 제쳐놓고 여타 분야와 연계해 발전시키겠다는 건 자칫 ‘앙꼬(팥소) 빠진 찐빵’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정말 블록체인이 인터넷·스마트폰·인공지능의 뒤를 이어 디지털 혁신을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이라 생각한다면, 기술발전의 최대 매개인 암호화폐를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다소 껄끄러워도 암호화폐 관련 전략이 포함됐어야 진정성 있고 파급력도 큰 액션플랜이 되지 않았을까.
기술 못지않게 그 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도 중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사용되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적으로 입증됐다. 블록체인이 암호화폐를 우회하기 어려운 이유다. 앞으로라도 당국의 정책 입안 시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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