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울산 여천동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제3 파라자일렌(PX)공장은 가동 후 처음으로 맞은 정기보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작업자들은 오는 7월1일 재가동을 앞두고 잠시 멈춘 PX 증류탑 사이를 움직이며 복잡하게 연결된 배관을 꼼꼼히 점검했다. 현장에서 만난 전영기 SK종합화학 아로마틱 생산4팀장은 “제3 공장은 다른 공장과 다르게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파이프가 더 많이 설치돼 있다”며 “이게 매년 200억원을 벌어다주는 효자”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일본 최대 정유사인 JXTG에너지와 함께 1조원을 들여 2014년 울산아로마틱스(UAC)를 세웠다. UAC가 운영하는 제3 PX공장은 매년 PX와 벤젠을 각각 100만t, 60만t 생산한다. PX는 대표적인 방향족(아로마틱) 제품으로 페트병이나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데 필수품이다. 합작파트너인 JXTG가 제품의 절반을 일본으로 가져간다.
SK종합화학 엔지니어들이 EEAC가 적용된 공장 증류탑을 점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종합화학 엔지니어들이 EEAC가 적용된 공장 증류탑을 점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에너지 효율화 난제 해결

PX 생산은 증류 작업이 포함된 공정 특성상 연료비 부담이 큰 편이다. 제3 PX공장 신설을 검토할 때 연료비 절감 문제로 고심하던 SK이노베이션은 미국 UOP가 보유한 특허기술인 고효율에너지아로마틱시설(EEAC)에 주목했다. EEAC는 증류용으로 만든 열을 식혀서 버리지 않고 공장 내 다른 장치와 시설에 공급해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시스템이다. 열교환기와 파이프라인을 이용하면 2개 가열원으로 18개 장치·설비에 열을 공급할 수 있다. 기존 공장에선 1개 가열원으로 4~5개 설비에 열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구현된 적 없는 ‘문서 속 기술’이라는 점이었다. 많은 석유화학 회사가 도입을 원했지만 파이프라인이 늘어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수격현상이 발목을 잡았다. 수격현상은 유체 흐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파가 배관을 때리는 것을 뜻한다. 수격현상으로 파이프가 부서질 우려가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소용이 없었다. 제3 PX공장 시운전팀 직원들은 UOP를 방문해 엔지니어를 만나고 각종 서적, 논문을 탐독했다. 조현수 생산4팀 선임대리는 “경력 20년이 넘는 직원들도 수격현상을 방지할 안정적인 운영 노하우를 쌓기 위해 75일 동안 2조 2교대로 일했다”며 “일본 합작 파트너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을 걸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 시운전에 성공한 UAC는 2014년 6월부터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문서 속 기술' 현실화… 年400억 아끼는 SK이노베이션
◆연료비 절감해 원가경쟁력 강화

세계 최초 성공이라는 명예는 원가 절감이라는 경쟁력을 가져다줬다. 제3 PX공장은 기존 공장보다 액화천연가스(LNG) 같은 운영용 연료를 15%가량 적게 쓰고 있다. 이를 통해 아끼는 운전비용이 연간 200억원이다. 전 팀장은 “파라자일렌은 일정 순도만 충족하면 가격으로 승부해야 하는 제품”이라며 “연료비를 줄인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SK종합화학은 세계 최초로 현실화한 EEAC 운영 노하우를 1000장짜리 백서로 남겼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자회사 SK인천석유화학도 같은 기술로 매년 200억원을 아끼는 등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 영업이익인 3966억원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이 EEAC로 거두는 이익만 매년 400억원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 사례를 공유하는 등 구성원의 자발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은 “세계 최고 고효율 공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울산=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