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24일(현지시간) 전격 취소했다. 지난 3월8일 백악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받고 회담을 수락한 지 77일 만이다. 북한 비핵화 해법을 찾기 위해 추진됐던 역사적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다시금 ‘시계 제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을 통해 공개한 김정은에게 쓴 편지를 통해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고려할 때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번에 놓친 (정상회담) 기회는 역사에서 매우 슬픈 순간”이라며 “언제라도 이 중요한 정상회담에 대한 마음이 바뀌면 전화하거나 편지를 써달라”고 김정은에게 제안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선 정상회담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당신(김정은)은 북한 핵 능력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더 크고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신에게 이를 사용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밝혀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미·북 정상회담 취소는 이날 오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고 회담 철회 가능성을 거론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북한은 이날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폐기 현장은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취재진이 참관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