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범행성격·가정환경 등 참작…실효성 없는 사형제도 원인

재가한 어머니 등 일가족 3명을 살해한 김성관 피고인에게 왜 검찰이 구형한 사형이 선고되지 않았을까?

일반적인 법감정에 비춰보면 이런 흉악범죄에는 사형이 선고되는 게 마땅해 보이지만, 1심 재판부는 "극형까지는 과하다"는 판단을 했다.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2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중에는 사형이 선고된 사례가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고는 다소 의외로 법조계 안팎에서 받아들여진다.

최근 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여중생 1명을 유인해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이 사형을 선고받은 것과 견주어도 결코 죄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김 피고인은 천륜 관계인 모친과 계부, 그리고 10대의 이부(異父)동생까지 흉기로 살해하고, 체크카드 등을 훔친 뒤 뉴질랜드로 달아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구심에 대해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A4 용지 두쪽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를 법정에서 직접 설명했다.

재판부는 우선 이 사건을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하면서도 파렴치한 범행"으로 규정하고 "피고인에 대해 가장 중한 형인 사형을 선고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로 이를 선고할 때에는 사형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 사형 선고의 '남용'을 경계했다.

특히 재판부는 범행의 특수성에 주목했음을 강조했다.

죄질이 몹시 나쁘기는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살인 또는 살해 욕구가 발동해 살해하는 경우와는 이번 사건이 구별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인명 경시 성향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근거로 김 피고인의 범행 동기를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인 어머니가 재혼한 뒤 이부동생을 낳아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끼자 보상심리가 작용해 과시적인 성향과 자기 초점화된 사고 양상을 보이게 됐고 자신의 재력을 허위로 과시하다가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을 살인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가운데 가장 죄질이 나쁜 제5유형이 아닌 제4유형(중대범죄 결합 살인)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인격 형성 과정에 참작할 부분이 있는 점, 자신의 범행 자체를 인정하며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점, 국내에서 형사처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형은 지나친 형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1997년 12월 30일 이후 20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는 점을 의식해 재판부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해도 2심, 3심을 거치면서 감형되는 경우가 많고 집행도 되지 않아 최근에는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김 피고인이 사형을 면하면서 올해 사형이 선고된 사례는 이영학이 유일하다.

이영학 이전에는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혐의(상관살해 등)로 2015년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016년 2월 사형이 확정된 임모(26) 병장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