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철회 가능성 무게…재협상 노림수지만 이란은 '미국 뺀' 합의유지 시사
파기시 이란 핵개발 재개·중동 군비경쟁·미국의 공격 가능성 등 우려
북미정상회담 변수 촉각…'미국 신뢰성 떨어뜨릴 것', '北 신경안쓸 것'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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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운명을 좌우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동안 상황을 관망하던 전 세계가 서서히 긴장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미국의 결정은 이란을 넘어 중동 전체의 정세를 뒤흔들 메가톤급 파급력을 가진 데다 세계 경제를 출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의 핵 협상을 앞둔 북한에도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여, 5∼6월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결국 핵합의 철회하나…"파기 통해 재협상 압박할듯"
8일 오후 2시(현지시간) 발표를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핵합의 파기'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협상 과정에 정통한 외교관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맬리 국제위기그룹(ICG) 대표도 이날 APT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발언들과 그를 설득하기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그가 합의에서 발을 빼지 않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앞서 미국을 국빈 방문해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중재 노력을 기울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기자들과 만나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사정 때문에 이 합의를 끝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예상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뿐만 아니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이 최근 잇따라 방미해 '핵합의 구하기'에 소매를 걷어붙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는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많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사상 최악의 합의"라며 파기를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누차 합의 내용을 맹비난하며 재협상을 요구해왔다.

NYT와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 중 '이란이 새 핵연료를 15년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일몰 조항의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테러단체 지원 문제가 핵합의에 담기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란 핵합의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는 점에서 이를 폐기하고 '내가 더 나은 협상을 했다'는 성과를 자국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현존 핵합의를 파기하면 이란이 새 협정을 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 이란의 대응은…"미국 뺀 나머지 서명국들과 핵합의 유지"
그러나 이란이 호락호락 미국이 원하는 대로 재협상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대로 재협상에 응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의 철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란은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이 핵합의를 유지하자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7일 연설에서 "JCPOA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미국 없이도 충족될 수 있다면 그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면서 2015년 핵합의에 서명한 6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이 합의사항을 보장할 경우 이란의 계속 JCPOA를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핵합의 존속을 원하는 유럽과 대(對) 이란 제재를 부활할 것으로 점쳐지는 미국 사이에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재부과하는 대신 이란과의 경제 관계를 이어갈 유럽 국가들에 대해선 제재 위반에 따른 벌을 주지 않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철회한다면 가장 직접적으로 우려되는 문제는 이란의 핵개발 재개 가능성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던 유럽 정상들이 내세운 논리도 '미국이 먼저 철회하면 이란에 핵연료 생산 재개의 명분을 주게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 핵합의 파기시 이란 핵개발 재개할까…중동 전운 고조될듯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을 뺀 핵합의 유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란이 당장 합의 파기에 동참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의 제재 부활로 이란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결국은 핵개발로 돌아설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는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대 이란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발탁으로 이란의 핵개발 재개 시 테헤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워싱턴 조야에서 나오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게다가 이란의 핵개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다른 중동 국가들의 경쟁적인 핵개발을 촉발해 중동에서 군비 경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국제 위기 분석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이란 핵합의의 철회는 지금까지 미국이 동맹들의 얼굴에 날린 가장 강력한 따귀 때리기"라고 비판했다.

브레머 회장은 이란 핵합의 철회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보다 더 중대한 결정이 될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 北 비핵화 협상에 변수될까…국제유가도 출렁일 전망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주목을 받는 것은 중동을 넘어 북한과의 핵협상에도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기의 담판'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CNN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핵합의 파기가 특히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협상 파트너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와 관련해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우려했다.

WP도 몇몇 외교 전문가들이 이란 핵합의의 파기가 김정은 정권에 '미국은 믿을 수 없는 협상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더라도 이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이란보다 더 강력한 합의를 원한다'는 기준을 제시할 뿐, 북한의 태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의 철회 결정은 기존 이란 핵협상이 북한에는 충분치 않으며 더 나은 협상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측면에서 그들이 이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자신이 다른 누구와도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를 기준으로 7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가 이란 핵합의 파기에 따른 원유 공급 위축 우려로 더 상승하는 등 글로벌 경제가 출렁일 것이라는 염려도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