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으로 지정돼 있는 공무원 국적기 탑승 제도를 폐지해주기 바랍니다.”

“공무원들이 왜 비싼 운임을 내면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나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이 난데없이 공무원 국적기 탑승 제도에 대한 논쟁으로 뜨겁다. ‘정부운송의뢰(GTR: government transportation request)’로 불리는 이 제도는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나갈 때 국적 항공기를 이용토록 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1980년 제도 도입 당시부터 정부와 계약을 맺고 거의 40년 동안 연간 300억~400억원 규모인 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공무원은 대한항공만 타야 된다?… 국적기탑승제도 40년 만에 폐지 '기로'
이 제도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조현민 사태’와 관련이 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사회 문제가 된 뒤 불똥이 공무원 국적기 탑승 제도로 튄 것이다. 정부가 공무원 출장에 국적기 이용을 의무화한 것은 일종의 대한항공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해 폐지해야 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연 5만명 국적기 이용

GTR 제도는 국적 항공사를 육성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대한항공이 정부와 계약을 맺은 뒤 1990년 아시아나항공이 추가로 계약해 두 개사가 GTR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 실적은 대한항공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4년 대한항공의 GTR 항공권 판매액은 주요 10대 노선 기준으로 1797억원, 이용 공무원은 21만2574명으로 집계됐다. 아시아나항공은 판매액 425억원, 이용 공무원은 3만6056명에 그쳤다. 두 항공사를 합쳐 한 해 공무원 5만여 명이 국적기를 이용해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있는 셈이다.

GTR 계약은 정부나 항공사가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3년 단위로 자동연장된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총수 일가의 ‘땅콩 회항’, ‘일감 몰아주기’ 등 논란에도 불구하고 매번 자동연장을 받아왔다.

하지만 GTR 항공권은 가격이 과도하게 비싸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지난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비수기 이코노미석 기준 인천~미국 뉴욕 간 GTR 항공권 구매 가격은 302만600원으로, 일반 항공권(111만1200원)의 세 배 수준이었다.

공무원은 운임이 싼 다른 항공사를 선택할 경우에는 GTR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운임이 싸다는 증빙을 공무원 본인이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부분 GTR을 선호하고 있다. 한 고위 공무원은 “저비용항공사(LCC) 이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만 제도를 개선해도 예산 절감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제도 보완 착수

GTR 제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개선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인사처는 GTR 제도 개선을 위해 부처 간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8일 확인됐다. GTR 관련 예산권을 쥔 기재부는 ‘물벼락 갑질’ 사건에 따른 여론 악화와 예산 낭비 문제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항공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부도 폐지를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반면 GTR 제도 주무부처인 인사처는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GTR은 최대 30% 수준의 취소 수수료가 없는 만큼 비싸다고 볼 수 없고, 항공사와의 협약으로 좌석 확보나 예약 변경이 손쉽다는 이유에서다. 세 부처는 어떤 식으로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국토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 LCC 등 다른 국제선 항공사나 여행사를 GTR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인사처는 기재부와 국토부 의견을 검토해 GTR 재계약 시점인 오는 11월 전까지 개선방안을 확정키로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