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대 묘지군의 돌무지 무덤.
훈족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대 묘지군의 돌무지 무덤.
‘알타이’라는 말은 어렸을 적부터 들어 왔기 때문인지 낯설지 않지만, 정확하게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인지는 이곳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곳이다. 그렇지만 세계가 하나 돼 가는 이제는 점차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알타이 산맥은 몽골,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고지대이고 사람이 거의 가지 않는 오지다. 요즘 들어서 이곳 또한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일컬을 정도로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부여족’의 뿌리가 알타이라는 것을 여러 설화나 민속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로도 그 가능성이 조금씩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타이’라는 말이 ‘황금(金)’이라는 뜻인데, 신라의 지배층이던 경주 김(金)씨가 이곳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천마총 발굴 자료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아랄 톨고이로 가는 길에 만난 몽골 사람들.
아랄 톨고이로 가는 길에 만난 몽골 사람들.
이번 취재의 목적은 이 일대에 흩어져 있는 암각화를 찾아 기록 촬영하는 것이었다. 세계 곳곳의 고대 인류가 살았던 곳에는 그 흔적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알타이의 암각화도 그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몽골 알타이의 암각화들이 시대성과 다양성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돋보이기에 몇 군데가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고대인의 삶의 흔적이 가득한 암각화

[여행의 향기] 바위에 새긴 알타이 문명의 '보석'… 고대 유목민 삶과 꿈을 마주하다
몽골 알타이 산맥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서쪽 끝인 ‘홉드 아이막’과 ‘바양 얼기 아이막’이라는 곳인데, 일단 울란바토르에서 프로펠러가 달린 항공편을 이용해 세 시간 동안 날아가 도착한 곳이 ‘홉드’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암각화군(群)이 있는 곳은 바양 얼기 쪽이지만, 먼저 그보다 동남쪽의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바양 올’이라는 마을 주변 일대에 흩어져 있는 또 다른 암각화군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몇 년 전 국내 학자들이 답사하고 난 후 알려진 곳이다. 일단 그 보고서의 정보에 의존해 찾아 나서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길다운 길이 없고, 안내판 하나 없는 곳이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막성 지형물이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면서 손짓 발짓으로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사방 천지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야말로 넓은 저수지에 빠진 바늘 찾기다. 한참을 헤매며 시간만 허비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에서 한 노인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며 그 노인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에 차를 타고 10여㎞ 초원길을 달리니 그 노인이 살고 있는 ‘게르’가 나왔다. 향토 사학자인 듯한 ‘파슨 도르처’라는 그 노인은 일전에 국내 학자들이 왔을 때도 안내를 맡았다고 하면서 길 안내에 흔쾌히 응해줘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날아가는 화살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암각화.
날아가는 화살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암각화.
초원과 사막을 지나고 산을 넘어 만나는 암각화들은 그야말로 보물찾기였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만나는 그것들은 보석처럼 다가왔다. 염소와 양, 사슴, 소, 그리고 사람 등이 그려져 있는 암각화들은 마치 현대 회화를 보는 듯했으며, 수천 년 전 목동들에 의해 그려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주로 산 아래쪽 어두운 색깔의 판판한 바위에 분포하고 있다. 그야말로 바위 그림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사냥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수레바퀴와 남녀가 성행위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고대 목동들이 그냥 심심해서 낙서하듯 그렸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도 있고 예술성도 있어 보이는 고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라 해야 할 듯하다. 어떤 바위에는 집단적으로 그려져 있으면서 내용 또한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해 문자가 없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카메라를 다루는 손끝이 가볍게 떨려 왔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수직 바위’라는 뜻의 ‘하난 핫’이라는 곳인데, 일부는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렸지만 위아래, 좌우 곳곳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에는 어떤 특정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옷무사들을 그린 조스틴 하드 암각화.
갑옷무사들을 그린 조스틴 하드 암각화.
현대 미술을 연상케 하는 생생한 예술품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이라 하루 해가 무척 짧다. 마을까지는 너무 먼 곳이기에 캠핑을 하기도 했지만 밤에는 눈까지 내려 너무 춥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유목민 게르에서 그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난데없는 손님맞이에도 부담 없어 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레를 타는 모습을 표현한 암각화.
수레를 타는 모습을 표현한 암각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암각화군은 바양 얼기 아이막에 속해 있는데 ‘차간살라’ ‘차간 골’ ‘아랄 톨고이’라는 곳이다. 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서쪽 끝 고지대의 오지 중 오지이기 때문에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국경수비대의 특별 허가를 먼저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차량 수배였다. 고비 알타이 지역에서 함께한 운전수가 그쪽은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계절에는 너무 위험해 갈 수 없다고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차량을 수배했고, 몽골어가 통하지 않는 카사크족이 사는 곳이라 길 안내를 받기 위해서는 카사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더 많은 정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사진 한 장 구경하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서 그 깊숙한 오지로 찾아 나섰다. 안내판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길조차 없어 우리가 가는 곳이 길이 됐다.

먼저 ‘차간 살라’와 ‘차간 골’을 찾아 나섰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어쩌다 유목민 게르가 하나씩 보이는 것이 고작이고 주변 산에는 벌써 눈이 쌓여 하얗게 빛나고 있는 오지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도중에 만난 노인 한 분이 그쪽을 잘 알고 있어 동행했다. 알고 보니 그 일대의 ‘이장’쯤 되는 분으로, 그쪽 암각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넘고 넘어 도착한 ‘차간 살라’의 암각화는 러시아 국경에 바짝 붙어 있는 산 밑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이 암각화를 그린 당사자들은 국경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봐 온 다른 지역 암각화들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널찍한 바위 형태가 달라 보였고, 집단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내용이 좀 더 풍부하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다가 연조가 좀 더 깊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과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느 한 바위에는 동물 사이에 사람의 옆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어 마치 현대 미술을 연상케 하는 것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동물도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적어도 3500년 이상 된 것이라는데, 그 많은 세월을 견디고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분명 시원찮은 도구만으로 그린 고대 유목민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지금 누구에게 그리게 한다고 해도 예술적 감각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1만2000년 전 훈족이 만든 작품으로 추정

마지막으로 찾아 나선 곳이 ‘큰 산’이라는 뜻의 ‘아랄 톨고이’의 암각화다. 이곳은 중국과의 국경에 접해 있는 오지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험한 곳이다. 도중에 군인들을 만났는데 허가를 받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금지구역이라면서 길을 막은 채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 없는 일. 통사정도 하고 세금도 내고 해서 위기를 넘기다 보니 찾기도 전에 산간에서 밤이 됐다. 그렇지만 무엇이 두려우랴. 텐트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데…. 하지만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야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행스럽게 아무도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깊숙한 곳에도 유목민 집이 하나 있었다. 몽골족도 카사크족도 아닌 ‘토와족’ 내외가 밤늦게 난데없이 나타난 이방인들에게 서슴없이 잠자리를 내주었다.
아랄 톨고이 돌무지 무덤.
아랄 톨고이 돌무지 무덤.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아랄 톨고이’ 암각화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널찍한 바위에 집중적으로 갖가지의 동물과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사냥하는 모습에서 날아가는 화살과 화살을 맞은 채 도망가는 동물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중 거대한 뿔을 가진 큰 사슴 그림이 단연 압권이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암각화들은 놀랍게도 1만2000년 전쯤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암각화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평지에 고대 묘지군이 있다. ‘키륵 수’라고 말하는 수십 개의 돌무지와 ‘쿠누 초도’라 말하는 사람 모양의 돌비석이 서 있는 곳이다. ‘쿠누 초도’는 마치 전남 화순 운주사의 석인상과 매우 비슷하다. 이 무덤들은 기원전 ‘훈족’들의 지배층 무덤이라 알려져 있다. 특이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보그트’라 말하는 여러 개의 돌비석들이 각각의 무덤과 무덤 사이를 일렬로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느낌상으로만 볼 때 어쩌면 이 돌무지 무덤들이 별자리를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암각화의 주인들이 훈족이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중에 1만2000년 전의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쩌면 이곳의 원주민이었다는 ‘알타이 부여족’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남긴 흔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암각화들이지만 안내판은 물론이고 특별 보호 장치 없이 방치돼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암각화 표면에 코팅처리한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일까. 유목민이나 가축이 거리낌 없이 밟고 지나다닌다. 어쩌면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이렇게 지내왔는데 지금 와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닐 성싶다. 알타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여행의 향기] 바위에 새긴 알타이 문명의 '보석'… 고대 유목민 삶과 꿈을 마주하다
여행 메모

인천에서 몽골까지 대한항공과 몽골항공 직항편이 있다. 몽골까지는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알타이로 가려면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이동할 수 있지만 항공으로 이동할 경우 홉스나 얼기로 가는 것이 좋다. 현지에서 차로 이동하려면 지프를 렌트하는 것이 좋다. 국경 근처로 가려면 별도의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현지에는 한국 식료품점이 많다. 야영이나 노숙할 경우 필히 겨울용 침낭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몽골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겨울에는 영하 35~40도, 여름에는 영상 25~30도를 오르내린다. 6월부터 9월이 몽골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또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에 모자·선글라스·자외선차단제 등을 준비해야 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한 시간 늦다. 화폐 단위는 투그릭(Tugrik)으로, 1000투그릭이 약 500원이다. 몽골을 여행하기 위해선 비자가 필요하다. 주한 몽골대사관에서 30일 체류비자를 받을 수 있다.

알타이(몽골)=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