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보안성에 놀란 권위주의 정권 검열 본격착수
사생활·영세상인 위협…러·이란 "반체제 테러분자 통신수단"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퇴출… 사생활 보루 vs 반체제 흉기
러시아와 이란이 모바일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을 퇴출하기로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두 권위주의 국가의 이번 조치를 둘러싸고 사생활 통제, 소규모 사업 침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권을 중심으로 한 그 반대편에서는 텔레그램이 반체제 테러세력의 통신 수단으로 변질했기에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퇴출… 사생활 보루 vs 반체제 흉기
◇ 대중성과 보안성 겸비한 '비밀대화의 황제'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SNS ‘브콘탁테(VKontakte)’를 설립한 니콜라이 두로프와 파벨 두로프 형제가 개발한 무료 모바일 메신저다.

서비스는 2013년 8월 시작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1억7천만 명가량이 이용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 등 일반적인 메신저와 달리 메시지, 사진, 문서 등을 암호화해 전송할 수 있도록 해 보안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8일 러시아 당국이 텔레그램 폐쇄에 몰두하는 원인이 넓은 대중성과 높은 보안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비밀이 고도로 보장되는 대화를 너도나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퇴출… 사생활 보루 vs 반체제 흉기
◇ 권위주의 국가들에는 '공공의 적'
사생활 통제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 권위주의 국가나 테러와 같은 안보불안을 겪는 국가들에는 대중성과 보안성 자체가 위협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은 암호화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정보를 달라고 텔레그램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자 러시아 법원은 지난 13일 텔레그램을 차단하라고 결정했다.

러시아 미디어·통신 감독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텔레그램 폐쇄에 나서 관련된 IP 계정 수백만 개를 차단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도 러시아와 비슷한 조처를 하며 텔레그램을 금지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를 위해 모든 공무원과 정부 부처들에 텔레그램 사용을 중단하라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국익보호와 소셜미디어 독점종식'을 이유로 텔레그램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발표는 이란에서 전국적인 텔레그램 사용 금지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퇴출… 사생활 보루 vs 반체제 흉기
◇ 사생활 침해 넘어 실질적 생존권까지 위협
러시아와 이란의 극단적인 '텔레그램 퇴출' 정책을 두고 논란도 일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에서 사용자 인구가 많은 텔레그램 차단이 일단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대한 정권의 통제가 강화되고 텔레그램으로 사업하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타격을 받는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러시아에서는 최소 1천300만명, 이란에서는 약 4천만명이 텔레그램을 각각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은 두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공무원 사이에서도 널리 이용되는 주요 메신저로 자리 잡은 상태다.

특히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차단된 이란에서 텔레그램은 개인 간 소통뿐 아니라 상품 광고, 운송업 등에서 널리 쓰인다.

수백명의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한 텔레그램 폐쇄 추진으로 이란에서 사회적 반발이 예상될 수 있는 대목이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도 대규모 IP 계정 차단 때문에 다른 메신저인 바이버(Viber)가 접속 장애를 일으키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는 어학교와 택배와 같은 소규모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AP통신도 이 조치로 러시아에서 수백만의 사업체와 소비자가 문제를 겪었다고 실태를 전했다.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퇴출… 사생활 보루 vs 반체제 흉기
◇ 테러·반체제운동 도구? 소셜미디어 검열 확산할 수도
러시아와 이란 당국은 '테러리즘 확산과 전국적 반정부 시위'에 텔레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그 메신저의 통제와 폐쇄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국은 또 이 같은 조치들이 테러 분자들과 반정부 세력의 SNS 악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 보수인사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텔레그램을 차단하고, 자국에서 개발된 '토종 메신저 앱'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한 주간 이어진 전국적 시위·소요 사태를 진압할 때도 텔레그램을 차단한 적이 있다.

러시아의 인터넷 전문가는 정부가 텔레그램 차단에 성공하면 그다음엔 다른 소셜미디어에도 강력히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의 인터넷 역사를 다룬 '레드웹'의 저자 중 한 명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당신이 텔레그램을 인정사정 없이 공격하고 IP 계정 수백만 개를 차단할 정부 기관을 소유했다면 당신은 이후에 바라던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은 페이스북과 구글까지 쫓아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 좌로프 청장은 전날 발행된 현지 일간 '이즈베스티아'와 인터뷰에서 연말 전에 페이스북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