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빨갛게 타오르는 남녘의 섬, 봄단풍이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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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16> 봄섬 춘백의 향연 속으로, 홍도·보길도·우도
고고하던 冬柏, 화려한 春柏으로 다시 피었네
이름만큼 붉은 홍도, 깃대봉 초입에서 정상까지 동백나무 터널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인 보길도… 그중 으뜸은 세연정·부용리
통영 우도 동백숲, 수백년 고목들이 잘 가꾼 분재처럼 아름다워
<16> 봄섬 춘백의 향연 속으로, 홍도·보길도·우도
고고하던 冬柏, 화려한 春柏으로 다시 피었네
이름만큼 붉은 홍도, 깃대봉 초입에서 정상까지 동백나무 터널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인 보길도… 그중 으뜸은 세연정·부용리
통영 우도 동백숲, 수백년 고목들이 잘 가꾼 분재처럼 아름다워
동백은 그 이름 때문에 겨울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겨울 동백을 보기는 쉽지 않다. 동백도 추위를 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백의 절정기는 봄이다. 이즈음 남녘의 섬들은 붉게 타오르는 동백의 열기로 뜨겁다. 동백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피는 개화 기간이 무척 긴 꽃이다. 남쪽 섬의 성질 급한 동백들은 10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5월 초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동백 열매는 실용성도 뛰어났다. 요즘 동백기름을 함유한 화장품이 인기지만 옛날부터 우리 여인들은 동백씨앗을 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고 식용이나 등잔불 밝히는 데도 썼다. 남해안의 섬들에서는 섣달그믐 저녁이면 동백꽃 우린 물로 목욕하는 풍습도 있었다. 동백꽃 물로 목욕하면 종기도 치료되고 피부병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백은 주술적인 힘도 지녔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나 엉덩이를 치면 그 여자는 사내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묘장(卯杖) 또는 묘추(卯錐)라 했다.
동양뿐만 아니다. 서양에서도 동백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의 소설<춘희>에 나오는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한 달 내내 밤이면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래서 그녀는 카멜리아의 여인(동백꽃 여인)으로 불렸다. 이제 또 절정으로 치닫는 동백, 아니 춘백의 계절이다. 겨울꽃이라는 편견 속에 잊고 지냈던 동백을 보러 떠나 보자. 그 어느 봄꽃보다 화려한 동백을 볼 수 있는 동백섬으로.
세계 명작 같은 섬들이 있다.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줄거리를 꿰고 있어서 마치 읽어본 듯한 착각이 드는 세계 명작. 가보지 않았는데도 방송 언론에서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마치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섬. 홍도는 그런 세계 명작 같은 섬이다. 하지만 홍도는 진짜 읽어봐야 할 세계 명작 같은 섬이기도 하다. 거듭해서 읽을수록 맛이 새로워지는 걸작. 처음 가 보면 북적거리는 인파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줄서서 먹는 식당이라도 진짜 맛있는 집은 맛있다. 홍도가 그렇다. 갈 때마다 새롭고 깊어지는 특별한 섬. 홍도는 빼어난 절경의 기암괴석으로 유명하지만 홍도가 동백섬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홍도의 동백은 삼사월이 절정이다. 이즈음 섬은 온통 불타오르는 동백으로 인해 그 이름보다 붉다.
최고의 동백나무 가로수길, 보길도 부용리
보길도는 조선시대 대표적 시조인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창작된 공간이다. 고산이 보길도에 만든 부용동 원림은 비원, 소쇄원과 함께 한국 3대 원림(전통정원)으로 꼽힌다. 그래서 사람들의 보길도에 대한 기억은 어부사시사와 부용동 원림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보길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다. 발길 미치는 곳마다 동백 없는 곳이 없다. 허름한 오두막집 정원 한켠에도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보길도에서도 동백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세연정과 부용리다. 고산의 정원인 부용동 원림은 3대 공간으로 분류되는데 유희공간인 세연정, 주거공간인 낙서재, 선계 공간인 동천석실 지역이 그곳들이다. 이 세 공간이 모두 동백의 정원이기도 하다. 세연정 정원에는 세연정이란 정자와 연못들이 있는데 그 주변으로 수백 년 아름드리 동백나무 고목들이 늘어서 있다. 이 정원에서 동백은 두 번 꽃을 피운다. 한 번은 나무에서 또 한 번은 연못의 수면 위에서. 동백은 그 꽃이 질 때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온몸으로 낙화한다. 연못 위에 떨어진 동백은 붉은 빛이 더욱 선연하다. 이 연못 수면 위의 동백 앞에 서면 도무지 그 처연한 아름다움 앞에서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그대로 주저앉아 저물도록 동백만 보고 있어도 좋다. 수면 위 동백을 따라 한세월이 가고 또 한세월이 온다.
작지만 빼어난 동백섬 통영 우도
봄 동백이 아름답기는 통영 섬들도 빠지지 않는다. 욕지도, 한산도, 사량도 등 통영에도 이름난 섬이 많지만 동백이 아름답기는 단연 우도가 손꼽힌다. 연화도와 지척인 우도는 면적 0.447㎢에 20여 가구가 살아가는 아주 작은 섬이다. 그러나 동백꽃으로는 다른 큰 섬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우도란 이름의 섬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다들 소처럼 생겼다 해서 우도다. 통영의 우도 역시 수많은 우도 중 하나다. 통영 미륵산에서 바라보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서 우도 혹은 소섬이라 했다고 전한다.
우도의 동백숲은 큰 마을 언덕부터 시작되는데 수백 년 동백나무 고목들은 마치 잘 가꾼 분재처럼 아름답다. 언덕 넘어 뒷등 몽돌해변으로 가는 내리막길에는 동백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여름에는 더없이 시원한 이 길이 봄에는 붉은 열기로 뜨겁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해변에 주인이 떠난 지 오래인 빈집 한 채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마음이 짠해진다. 이 해변 건너에는 아주 특별한 무인도가 하나 있다. 가슴이 뻥 뚫려 있는 이 섬을 사람들은 구멍 섬 혹은 혈도(穴島)라 부른다. 오랜 세월 파도의 공격으로 섬은 구멍이 뚫려버렸을 것이다. 구멍 섬은 어쩌면 당신의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줄지도 모른다.
가슴이 시원해졌다면 이제 적막보다 고요한 숲길을 걸어보자. 옛날 섬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길을 다시 복원한 섬 둘레길. 4.2㎞에 이르는 숲길은 더없이 고즈넉하고 평탄하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는 눈부시고 통통거리는 어선들의 기관 소리는 정겹다. 이 길에서 숲은 끝 간 데 없이 깊어질 듯 하지만 길은 결국 선착장 마을 초입에서 끝나고 만다. 아쉬움에 가슴 저릴 때 거기 또 기적처럼 동백나무 터널이 펼쳐진다. 만개한 동백꽃들의 향연으로 도무지 숲을 빠져나갈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드는 마법의 터널이다.
강제윤 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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