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지난 1월 미국 클레어몬트경영대학원 산하 드러커연구소는 지난해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사무용품, 의료기기 등을 제조하는 3M을 선정했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을 제치고 110여 년 전통의 제조업체를 1위로 뽑은 것이다. 드러커연구소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정의한 ‘혁신’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지를 기준으로 순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드러커는 혁신에 대해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제품마저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M은 오랜 기간 혁신으로 제품과 기술을 무궁무진하게 축적했다.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 같은 대표 상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반 소비재, 헬스케어, 전자, 에너지, 안전장비 등 5개 분야에서 주방용 스펀지부터 리튬이온전지, 치과용 충전재, 태양광패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개발했다. 몇 가지 ‘히트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개발(R&D)과 신사업 확장에 한결같이 매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3M에 30년 넘게 몸담았고 지난 6년간 혁신에 박차를 가해온 이가 잉게 툴린 3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65)다.

“R&D가 3M 이끈다”… 매출의 6%까지 투자

[Global CEO & Issue focus] 잉게 툴린 3M 회장 겸 최고경영자
3M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을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데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녔다. 1920년대 세계 최초의 방수 사포를 개발한 이래 현재 6만5000여 종까지 제품을 늘렸다. 지금도 매년 1000개 이상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세계에서 출원한 특허는 10만 개를 넘어섰고 연간 약 3000개씩 늘어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연간 300억달러(약 32조원)를 넘는 이 회사 매출 중 3분의 1 이상이 최근 5년 안에 출시된 제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툴린 회장이 “R&D 투자는 언제나 우리에게 경쟁 우위와 수익성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2012년 취임 일성으로 R&D 투자를 2017년까지 매출의 6%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침체돼 많은 기업이 R&D 예산 감축을 고민하던 때였다. 툴린 회장은 2012년 매출의 5.5% 수준이던 3M의 R&D 투자를 매년 늘려 계획보다 1년 이른 2016년에 목표를 달성했다.

R&D 방식도 다른 회사와 달랐다. 먼저 3M이 보유한 원천기술을 세계 72개국에 퍼져 있는 모든 자회사와 사업부가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접착제 기술 하나를 포스트잇, 비행기, 치아 보철물 등 세 가지 영역에 응용하는 식이다. 툴린 회장은 “R&D에서 R을 따로 봐야 한다”며 원천기술에 대한 장기적 연구를 강조했다. 본사 중앙연구소에 46개 연구팀을 두고 상품화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세라믹, 부직포 등 하나의 기술만 수십 년간 연구하도록 했다. 대신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만드는 임무는 각 사업부 개발팀에 맡겼다. 다른 기업보다 5~10년 앞서가는 원천기술력 확보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기술력 강화와 사업 확장을 위해 대형 인수합병(M&A)에도 나섰다. 2015년 2월 여과기술업체 폴리포르인터내셔널의 핵심사업을 10억달러에 매입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안전장비업체 캐피털세이프티를 25억달러에 사들였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M&A였다. 이듬해엔 스위스의 의료데이터 관리업체 세미파인더를 합병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소방안전장비 전문업체 스콧세이프티를 20억달러에 인수했다.

33년 근무하고 회장까지 오른 ‘3M 사람’

툴린 회장과 3M의 인연은 그의 모국 스웨덴에서 시작됐다. 예테보리대에서 경제학·마케팅을 전공하고 IHM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그는 은행원, 제지회사 세일즈맨으로 잠깐 일하다 1979년 3M스웨덴의 영업·마케팅팀에 입사했다. 툴린 회장은 “나는 미국 기업을 찾고 있었다”며 “(3M은) 모든 것이 가능한 미국의 꿈, 기회와 연관된 장소처럼 여겨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3M에서 승승장구했다. 3M스웨덴의 생명과학 부문을 맡으며 처음 임원으로 승진한 데 이어 3M유럽의 시력관리 및 정형외과 제품 부문을 총괄했다. 1995년 3M러시아 상무로 부임한 이후 벨기에 프랑스 홍콩 캐나다 등에서 풍부한 글로벌 경험을 쌓았다. 스웨덴어 영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5개국어에 능통할 정도다. 2003년부터는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에 올랐다. 2008년 기준으로 150억달러 매출, 4만780명의 직원을 책임진 이 자리는 그가 3M 회장에 오르는 발판이 됐다. 그가 차기 CEO로 지명됐을 때 ‘전통적인 3M 리더십의 복귀’라는 평가가 나왔다.

3M 사상 최초로 외부 영입 회장이 된 제너럴일렉트릭(GE) 출신 제임스 맥너니, 다음 회장인 영국 레저보트 제조사 CEO 출신 조지 버클리와 대조적으로 툴린은 33년을 3M에서 근무한 진짜 ‘3M사람(3Mer)’이었기 때문이다.

맥너니 전 회장은 GE의 품질관리 프로그램 식스시그마를 도입하고 개발자들 사이의 경쟁을 독려하다 내부 반발을 샀다. 툴린 회장이 제품 혁신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3M 문화를 살려내고 지켜갈 적임자로 안팎의 기대를 모은 배경이다.

직원 자율성과 창의성 장려하는 문화 이끌어

툴린 회장이 강조하는 3M 문화의 핵심은 직원 개개인의 자발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5%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모든 직원은 기본 업무 외에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근무시간의 15%, 하루에 1시간가량을 쓸 수 있다. 직원들은 개별 연구 프로젝트, 취미활동, 자기계발 등 창조적인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 회사는 직원들이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따지지 않고 전적으로 직원 개인에게 맡긴다. 상사가 중단하라고 한 연구도 회사 설비를 이용해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보장하는 ‘부트레깅(밀주 제조)’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관리자에 의해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가 위축되는 일이 없게끔 자율성을 지켜주자는 취지다.

3M의 이런 개방적인 문화에 청년층도 호응을 보내고 있다. 2016년 미국고교장학생협회가 조사한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출생)가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3M이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구글을 비롯해 월트디즈니, 애플, 아마존 등 쟁쟁한 기업을 앞질렀다. 응답자들이 기업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꼽은 기준은 ‘직원을 평등하게 대한다’(73.1%)와 ‘탄력적 근무시간’(70%)이었다.

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