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호 지음 / 역사공간 / 496쪽 / 2만9000원
1970년 12월25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변의 한실마을. 마을 제실의 주인이자 한학자인 최경환 옹이 미술사학자 문명대 교수(동국대)에게 들려준 이 한마디가 국내 선사미술의 역사를 바꿔놨다. 반구대 인근의 불교유적 조사차 마을을 찾은 문 교수는 이날 국내 최고 선사미술의 하나인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을 발견했다. 꼭 1년 뒤인 이듬해 성탄절, 문 교수와 김정배(고려대)·이융조(충북대) 교수는 어로용 배를 타고 대곡천 산기슭의 바위들을 조사하다 수천 년 동안 망각 속에 묻혀 있던 ‘대곡리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발견했다. 문 교수가 이 암각화의 발견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미지의 마력》은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대곡리 암각화에 새겨진 사람과 동물 등 다양한 이미지에 담긴 의미와 이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문명사적 가치에 주목한 책이다. 책을 쓴 장석호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평생을 바위그림 연구에 바친 학자다.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실측조사해 도면을 제작하고 보고서를 발간했고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스칸디나비아, 탄자니아, 호주 등 세계 각지의 바위그림을 현지 전문가들과 조사했다. 저자는 이런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대곡리 암각화가 선사미술의 세계적 보편성 속에서 갖는 의미와 독창성을 추출해낸다.
높이 약 4m, 너비 약 8m의 ‘바위 도화지’에 얼마나 많은 형상이 새겨져 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지난 1월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는 대곡리 암각화의 바위그림이 기존에 알려진 307점보다 훨씬 많은 353점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울산암각화박물관은 2012~2013년 이곳 일대를 조사한 결과 307점의 그림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2000년 5월 예술의전당 지원으로 대곡리 암각화를 정밀 실측한 결과 270개의 형상을 확인했으며, 이 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형상들을 재검토한 결과 이보다 17점이 줄어든 253점으로 보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
특히 탁본을 떠 암각화를 연구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탁본은 암각화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대곡리처럼 중첩되고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부분의 형상을 떠내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탁본을 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형상 왜곡도 심하다고 한다. 대신 저자는 폴리에틸렌(투명비닐)을 이용해 형상을 하나하나 직접 옮겨 그리는 방법으로 실측도면을 작성했다.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이 여럿 확인됐다. 바위에 새겨진 253점의 그림에는 별별 것이 다 포함돼 있다. 얼굴 2점을 포함해 사람 그림이 16점이다. 육지 동물로는 사슴 42점, 멧돼지 18점, 호랑이 23점, 기타 7점이 있다. 바다 동물 중에는 고래가 63점으로 가장 많고 거북 6점, 물개 2점, 상어 2점을 포함한 물고기 그림이 5점이다. 펭귄그림도 2점 있고, 배 10점, 부표 5점, 작살 1점, 그물 2점 등 도구류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들 형상을 하나하나 분석해 그 의미를 짚어낸다. 연구 결과 암각화는 3개의 층위로 조성됐으며 제작 기법이 선 쪼기, 면 쪼기와 절충 쪼기, 선 쪼기 순으로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연구에서 울타리나 사슴 목에 맨 고삐, 사슴뿔 등으로 알려졌던 형상은 작살잡이와 어부들이 타고 있는 배였다. 이 암각화를 최초로 남긴 제작자는 선단을 구성해 난바다에서 고래를 잡았던 선단식 포경의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또한 작살이 박힌 두 개의 고래뼈 그림은 적어도 5800년 전에는 고래의 뼈를 뚫을 수 있는 정교하고도 강력한 작살 포경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63점의 고래그림을 낱낱이 뜯어보면 그 다양하고도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게 된다. 암각화에는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혹등고래 등 8종의 수염고래와 범고래, 향고래, 부리고래 등 3종의 이빨고래가 새겨져 있다. 포유동물인 참고래가 새끼를 낳는 희귀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실측도면 작성, 형상판독, 층위구분, 동물형상의 구조와 양식 등 다양한 분석을 통해 “대곡리 암각화는 한반도 문명사의 여명기를 조형언어로 기록해 저장한 메모리칩이자 타임캡슐이며, 현재의 우리를 그 여명기와 이어주는 타임머신”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대곡천 건너편,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 이토록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은 이곳이 일상과 달리 성스러운 공간이었으며, 샤먼(주술사)으로 추정되는 사람 그림이 이를 증명해준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처럼 소중한 대곡리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훼손을 막을 방법을 아직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