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충돌 '인류 멸종' 막아라…'파괴 작전' 나선 美·러시아
미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이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큰 소행성을 핵무기로 파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잇달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러시아 대학과 기업 연구자들이 이달 초 소형 모형 소행성을 핵무기를 가정한 레이저로 파괴한 연구 결과를 내놓은 데 이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소행성을 핵폭탄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짜고 있다고 공개했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간 치명적인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0.01%다. 소행성 1만 개 중 1개 정도가 지구에 충돌한다는 이야기다. 우주를 방랑하는 소행성은 탄소와 실리콘, 금속, 얼음 등으로 이뤄진 작은 천체로 크기는 지름 30m부터 900㎞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초속 20㎞의 빠른 속도로 우주를 떠다니기 때문에 이런 소행성과 부딪히면 그 충격으로 지구는 멸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지름 50m 소행성이 떨어지면 대도시 하나가, 100m짜리가 떨어지면 남한 전체가 심각한 피해를 보는 수준이다.

러시아 모형 소행성 파괴 실험

소행성 충돌 '인류 멸종' 막아라…'파괴 작전' 나선 美·러시아
1908년 러시아 시베리아 퉁구스에 떨어진 소행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리틀보이) 폭발력의 185배가 넘었다. 당시 충돌로 약 2000㎢의 숲이 불에 탔다. 그보다 훨씬 전인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 공룡 멸종을 부른 원인도 소행성 충돌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도 지름 30m짜리 소행성(2012TC4)이 달까지 거리의 10분의 1 지점을 스쳐지나갔다. 50m짜리 소행성은 100년에 한 번꼴로 지구로 날아온다.

러시아 모스크바 물리학기술연구소(MIPT)와 우주연구소, 러시아 원자력공사 로사톰 산하 2개 연구소 연구진은 지구에 접근하는 위협적인 소행성 위에서 핵폭탄을 터뜨렸을 때 나타날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실험이론물리학저널’에 공개했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2013년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지름 20m의 유성이 폭발한 이후 핵무기로 소행성을 파괴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당시 유성이 폭발하면서 3600동 이상의 아파트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고 공장 지붕이 무너졌다. 주민 1210명이 떨어진 유리창과 부서진 건물 벽에 맞아 다치는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를 위협하는 소행성을 파괴하는 장면은 영화 ‘아마겟돈’에서 명장면으로 나온다. 러시아 연방우주청 연구진은 유럽 과학자들과 함께 일찌감치 소행성 충돌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연구를 했다. 당시 이런 구상은 천문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보리스 슈토프 러시아 천문연구소장은 “그런 생각은 증기망치로 호두를 까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과학자는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거나 완전히 파괴하려면 핵무기를 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시베리아 톰스크대 연구진은 지름 200m짜리 소행성을 핵무기로 폭파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레이저 실험과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수차례 실험했다. 연구진은 소행성의 형태와 구조를 똑같이 구현한 작은 모형을 제작했다. 재질은 가장 일반적인 소행성 형태인 돌이나 콘드라이트(휘석이나 감람석으로 이뤄진 운석)로 이뤄졌다. 화학 성분과 밀도, 투과성과 강도도 고려했다.

연구진은 레이저를 쏴서 소행성 모형을 파괴하는 실험을 했다. 지름 200m인 소행성을 축소한 지름 8~10㎜의 미니 모형 소행성을 파괴하는 데는 500줄(J)짜리 레이저 펄스가 사용됐다.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는 핵폭탄보다 에너지는 훨씬 작지만 실제 핵폭탄처럼 미니 소행성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작은 에너지의 레이저를 여러 번 쏘는 것보다는 큰 에너지의 레이저를 한 번에 발사하는 게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해 지름 200m짜리 둥근 형태의 소행성을 파괴하려면 3메가톤 이상의 핵폭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핵폭탄은 1961년 옛 소련이 개발한 58.6메가톤급의 차르 폭탄이다. 연구진은 핵폭탄을 소행성 파괴에 활용하려면 암석과 얼음, 철과 니켈 같은 다양한 성분 조합을 가진 소행성 모델에 대한 추가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소행성을 파괴하지 않고 궤도를 바꾸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지름 500m짜리 소행성 궤도 회피 연구

미국은 이보다 훨씬 큰 소행성을 회피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NASA는 2135년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 베누를 핵폭탄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 1999년 처음 발견된 이 소행성은 앞으로 100년 전후로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만에 하나 지구와 충돌한다면 2135년 9월22일이 가장 유력한 충돌 시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NASA는 베누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27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베누 지름은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높이와 맞먹는 500m로, 충돌한다면 지구 생물이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는 베누 충돌 위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8만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연구진은 핵폭탄을 실은 9t 무게의 우주선을 소행성으로 보내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지구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NASA는 아직은 이론적 수준에 머물지만 현실성이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방법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소행성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누의 궤도를 바꾸려면 소행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NASA는 이를 위해 2016년 오시리스 렉스 탐사선을 베누로 보냈다. 이 탐사선은 베누의 모양과 주요 성분을 관찰하고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올 예정이다.

영화 ‘아마겟돈’과 달리 소행성 파괴나 궤도 조정에 실패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초동 대응에 실패할 경우 부서진 소행성 파편이 지구에 떨어질 위험도 높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