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법무관이 내부 보고 없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시킨 것은 부당한 처분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전직 군법무관 지모씨가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 등 취소소송’에서 지씨가 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국방부는 2008년 7월 ‘북한을 찬양하고, 반정부·반미·반자본주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책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이적단체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군 장병들의 의식화를 위해 ‘교양도서 보내기 운동’을 추진한다는 보고를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받고 내린 조치다. 《북한의 우리식 문화》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등이 리스트에 올랐고,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포함됐다.

지씨 등 군법무관 7명은 그해 10월 불온서적 지정 조치가 ‘장병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보고나 지휘체계는 따르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육군참모총장은 2009년 3월 지씨를 파면했고, 소송이 시작됐다.

법원은 “법령준수와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면서도 “파면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고, 2011년 9월 지씨는 복직했다. 그러자 참모총장은 재판에서 인정된 징계사유에 따라 그해 10월 다시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국방부는 이 징계를 근거로 이듬해 1월 지씨를 강제 전역시켰고, 2012년 두 번째 소송이 시작됐다. 1·2심에선 국방부가 이겼다. 지휘계통을 통해 건의하는 등 군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선 다수인 대법관 8명이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상관의 지시나 명령 그 자체를 따르지 않는 행위와 위법 또는 위헌이라는 이유로 재판청구권을 행사하는 행위는 구별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헌법소원 제기 행위 자체가 ‘복종의무 위반’은 아니라는 취지다. 헌법소원 전 지휘 보고를 따라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이유로 제시했다.

반면 나머지 4명의 대법관은 “군 기강과 군 정신전력 보존을 위한 국방부 장관의 필요 최소한의 정당한 명령”이라고 봤다. “군 내부적인 시정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채 법무관들을 규합해 집단으로 지시에 불복종하려는 수단으로 헌법소원제도를 이용한 것은 징계사유”라는 설명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