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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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미국의 수입 철강 관세 추가 부과에 대해 보복 조치를 경고한 가운데 무역전쟁 우려가 재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19일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1985년 플라자합의 등 과거 사례에 비춰 실제로 무역전쟁이 발발한 가능성은 낮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단기적으로 투자심리에 부담이 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추가 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EU는 16일 보복관세 대상인 미국산 제품 200개의 목록을 발표했다. 수입액 기준으로 연평균 28억유로(약 3조6818억원)에 해당하는 미국 공산품에 관세를 부가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보호무역과 통화정책 논란 등으로 경제지표보다 이벤트에 시장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쏠려 있을 수 밖에 없다"며 "EU의 보복관세 조치에 따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결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달 19~20일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의 보호무역과 이로 인한 무역보복 확산을 억제하는 데 순조롭게 합의하지 못한다면 금융시장이 관련 우려에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역전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데 전문가들은 무게를 두고 있다.

이은택 KB증권 투자전략팀장은 "1980년대 중반에도 미국발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미국이 진짜 원했던 것은 무역불균형 해소였다"며 "무역불균형 해소 방법에는 수입 장벽을 높여 '수입을 줄이는 것'과 상대방의 수입 장벽을 낮춰 '수출을 늘리는 것'이 있는데 실제 미국이 택한 방식은 1930년대와 같은 수출 늘리기였다"고 설명했다.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1980년대에는 컴퓨터, 인터넷 산업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을 벌인 바 있다"며 "당시에도 출발은 전통 산업에 대한 무역분쟁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소위 '무역전쟁'으로 심화된 바는 없는 만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무역 관련 분쟁을 전쟁이 아닌 경쟁(競爭)의 양상으로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관련 우려가 이어지는 와중에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 연구원은 "1980년대 미국과 일본 간 패권 경쟁에서 엔화 가치 상승으로 한국 수출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렸던 사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주목하는 부분은 중국이 인수·합병(M&A)이나 비관세장벽 등을 활용해 한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왔던 산업들로 가장 대표적인 산업은 반도체"라고 진단했다.

최근 중국 신옌자산투자 컨소시엄의 미국 반도체 테스트장비업체 엑세라(Xcerra) 인수 무산,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제동 등에 비춰 중국 기업 행보에 대한 제동이 한국 반도체 및 IT 기업들에 대한 투자심리 개선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관측이다.

그는 "이러한 분위기가 강화된다면 첨단산업은 아니지만, 역시 중국과의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되면서 주가 동력이 약화된 조선 등 일반 제조업으로도 수혜가 확산될 가능성도 엿볼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강현기 DB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펼치는 일련의 경제 정책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기보다 조율 단계를 거칠 것"이라며 "미국의 정책 조율 단계에서 한국의 기계를 중심으로 한 산업재 업종의 주가 반등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