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안전망 갖춰지지 않아 구조조정 어렵다"
“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근로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합니다. 이대로는 어렵습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기업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구조조정 제도 자체는 정교하게 잘 짜여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그 제도까지 가는 과정이 어렵다”며 “실업 급여나 재취업 프로그램 같은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이후 6개월간 산은의 구조조정 업무를 꼼꼼히 살폈다. 금호타이어를 시작으로 대우건설 KDB생명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최근 논란이 빚어진 한국GM 등의 구조조정 작업까지 챙기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구조조정이 번번이 노동조합 반대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처럼 기업 정상화를 위한 인력 구조조정 등이 순탄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의 실업 급여 및 재취업 정책이 다른 국가보다 미흡한 데서 출발한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기업 구조조정 방식의 개혁과 안전망 강화를 동시에 촉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노조가 ‘회사가 문을 닫아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바깥 상황이 힘들기 때문”이라며 “노조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9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찾아 노조 집행부와 면담할 예정이다.

그는 “구조조정을 하려면 사회경제적 역할과 환경 등의 준비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사회 제도적 안전장치가 충분하다면 기업 청산 등에 이르는 구조조정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은 안팎에선 이 회장이 금융계의 고민을 진솔하게 얘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직장을 잃은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산은 책임론’도 제기한다. 이 회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선 “산은의 구조조정은 순수한 뱅커 입장이라기보다 정부의 브랜치로서 책임을 떠안는 성격이 강하다”며 “정부의 브랜치로서 한 일을 뱅커 측면에서 평가하고 비판할 때가 많아 위축되는 직원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비판받는 게 두렵지는 않다”며 “산은이 추진하는 구조조정 제도의 틀보다 큰 그림을 봐달라”고 덧붙였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