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펴낸 수필집(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의 예시다. 이 개념은 최근 극심한 경쟁 등으로 지친 현대인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같이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소박한 행복을 찾는 '소확행'과 일과 삶 속에서 균형을 찾는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열풍이 불면서 유통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부담스러운 집·차·명품가방 등을 구매하는 대신, 가구와 조명, 벽지, 침구 등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일보다 행복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들이 소비시장의 한 축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속속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신세계그룹은 국내 중견가구 업체 '까사미아'를 1837억원(지분 92.35%)에 인수하고 홈퍼니싱 시장에 진출했다. 5년내 매장을 160여개로 늘리고, 매출을 4500억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뿐 아니라 이마트의 '더라이프(The life)', '메종티시아(Maison Ticia)', '라이프 컨테이너(Life Container)'등 생활용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까사미아 인수는 공격적으로 가구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사장은 "이번 인수로 신세계백화점은 '홈 토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며 "신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도 2012년 리바트를 인수해 가구 사업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수 이후 리바트 키친, 리바트 키즈 등 11개의 B2C(기업·소비자간거래) 브랜드와 리바트 빌트인, 리바트 하움 등 4개의 B2B(기업간 거래) 브랜드를 세분화했다.
최근에는 현대리바트 모델로 송중기를 전격 발탁하면서 B2C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선정한 것은 2004년 배우 김남주 이후 14년 만이다.
또한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에이치몬도(H·MONDO)'를 선보이고, 미국 최대 홈퍼니싱 기업 '윌리엄소노마'의 국내 판권을 획득하고 지난해 297㎡ 규모로 첫 매장(현대백화점 목동점)을 오픈했다.
롯데백화점 역시 작년 자체 리빙편집숍 '엘리든 홈' 을 론칭했다. 칼 한센, 에릭 요겐슨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 3000여개를 선보이고 있다. 이케아와 협력 관계도 눈에 띈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이케아 광명 1호점에 롯데아울렛을 함께 오픈한 데 이어 고양 2호점에도 동반 출점했다.
이외에도 H&M 홈, 자라홈 등 의류 SPA(제조·직매형) 브랜드 및 현대홈쇼핑(라이프스타일 PB 브랜드 알레보), 미니소 등도 홈퍼니싱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이같이 국내 유통사들이 홈퍼니싱 사업에 앞다퉈 뛰어드는 것은 이 시장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진입하면서부터 인테리어 관련 제품 소비가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역시 이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홈퍼니싱 시장 규모는 2008년 7조 원 수준이었지만 2015년 12조5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2023년에는 1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1~2인 가구 증가 추세 및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자들 사이에서 '집 꾸미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존 이케아, 한샘의 '2강 구도'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들이 기존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홈퍼니싱 시장의 호황이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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