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5일, 류허(劉鶴) 중국 중앙재경위원회 사무처장이 27일 각각 미국 워싱턴 인근 덜레스공항에 도착했다. 양국 통상 ‘수장’들은 우연찮게도 이달 초까지 함께 워싱턴에 머물 예정이다.

바쁜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워싱턴에 할애한 이유는 미국의 심상찮은 통상공세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연초 대미(對美) 교역 흑자국을 향해 “경제 굴복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통상법 201조(세이프가드), 무역확장법 232조(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한 수입제한조치)를 꺼내들고 세탁기, 태양광패널, 철강·알루미늄 등에 ‘관세 폭탄’을 부과했다. ‘호혜세’ ‘스페셜301조’ 같은 카드도 흔들며 전선을 자동차, 반도체 등으로 확대할 조짐이다.

주요 타깃이 된 중국과 한국은 처지는 같지만 대응전략은 달라 보인다. 김 본부장은 워싱턴에서 주로 의회 정치인을 만나고 협회·단체를 방문한다고 한다. 통상정책에서 반(反)트럼프 진영에 선 사람들이다. 이들과 규합해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 기류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안보와 무역은 별개다. 통상압박에 당당하게 대응하라”(문재인 대통령)는 지시와 같은 맥락이다.

류 사무처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책사이자 50년지기 친구로, 오는 5일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경제를 담당할 부총리로 임명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 위세로 미국에서 목소리를 높일 법도 하지만 ‘로키(low-key)’ 행보다.

중국은 그의 방미 직전 미국산 닭고기에 부과한 관세 폭탄을 8년 만에 철회했다. 바로 다음날 미국이 중국산 알루미늄포일에 대규모 관세(106%)를 매길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맞대응하는 대신 화해 제스처를 선택했다.

류 사무처장은 또 방미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보좌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 ‘수뇌부’를 만나 은행과 서비스, 제조업 시장 개방 등에 대해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이런 중국과 한국을 어떻게 대할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중순 백악관 회의 때 자신의 통상 강공책이 반대에 부딪히자 “(피터) 나바로(백악관 무역·제조정책국장)는 어디 있느냐. 그에게 (회의 참석에 필요한) 타이틀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원조 보호무역주의자’ 나바로의 승진과 재기용은 대미 흑자국에 보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워싱턴의 한 통상 전문가는 “한국의 통상외교는 아직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나바로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먹잇감으로 중국 대신 한국을 선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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