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
선수와 유니폼색 맞춰 입고 응원
경기내용도 수첩에 꼼꼼히 적어
"스포츠·기업 모두 팀플레이 중요
포기 않고 도전하면 성과 낼 것
20일 네 번째 경기가 진검승부"
◆“1승이 필요하다. 이기고 싶다.”
정 회장은 지난 15일 체코전, 17일 스위스전, 18일 캐나다전 모두 선수들 옆에서 응원했다. 선수들이 입장할 때는 입구에 서서 선수 한 명 한 명과 ‘승리의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운을 북돋아 줬다. 정 회장이 일종의 의식처럼 여기는 ‘루틴(습관화된 행동)’이다. 그는 선수들이 파란 유니폼을 입는 날에는 같은 옷을 입었다. 하얀 유니폼을 착용한 18일에는 하얀 롱패딩을 맞춰 입었다. 협회 회장이기 이전에 하키 마니아이자 선수들의 든든한 서포터스인 정 회장의 애정이 엿보였다.
한국 대표팀은 체코전에서 공격수 조민호(30·한라)의 선제골이자 올림픽 첫 골로 기선 제압에 나섰지만 두 골을 내주며 1-2로 패했다. 정 회장은 “체코전에서 내주지 말아야 할 골을 먹어서 정말 아깝다. 우리는 이길 수 있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스위스전에선 0-8로 대패한 것에 대해 그는 “스위스 선수들이 확실히 빠르다. 움직임이 체코 선수들보다 가뿐하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에게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길 바라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 크게 성장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걸 보여주고 싶다. 감동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백지선 감독(51·영어명 짐 팩)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 2부리그 우승으로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에 올랐다. “아이스하키 변방 국가로서 이미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나”는 질문에 정 회장은 “그건 이미 지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과거에 안주하면 안 된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으니 멈추지 말고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한다”며 “한국 선수들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키와 사업 모두 ‘팀플레이’가 중요”
한국은 이날 캐나다에 0-4로 졌다. 하지만 세계랭킹 1위 캐나다의 골문을 위협하며 멋진 경기를 했다. 앞서 맞붙은 체코(6위) 스위스(7위)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스하키 명가들이다.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톱티어(top-tier·일류)의 벽을 한국(21위)이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 회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개인전이 아닌 팀플레이 스포츠에서 일류가 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언젠가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 만도도 글로벌 전장 부품 격전지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는 “정말 경영환경이 치열하다. 자율주행 관련 기술 중 어떤 것이 주도권을 잡을지 알 수 없다”며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해외 부품사와 글로벌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기술 경쟁력에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품사 역시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20일 오후 9시 핀란드(4위)와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8강전에 합류할 수 있다.
정 회장은 1994년 실업팀 만도 위니아(현 한라)를 창단한 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팀을 지켰다.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해마다 한라 아이스하키팀에 50억~60억원, 협회에 15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강릉=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