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특히 ‘파리지앵’이라고 불리는 파리 여성은 아름다우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의 표상으로 각인돼 있다.

신간 《파리의 여자들》(문학동네) 저자인 심리학자 장미란은 세계 어떤 나라 여자보다 아름답다고 찬양받는 파리 여성들이 사실은 세계에서 항우울제를 가장 많이 복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0년간 파리에 머물렀던 그는 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역사를 살아온 프랑스 여성의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그가 만나온 프랑스인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저자가 살을 붙인 소설 형식의 책이다.

저자는 세상의 편견과 가족사의 고난을 뚫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파리 여성의 치열한 인생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 책의 특징은 화려한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전문직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 가려진 다양한 인종, 계급의 여성을 조망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여성은 튀니지에서 파리로 이민온 라시다다. 자신이 관리인으로 일하는 아파트의 한 집을 차지하고 수십 년째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파리의 일원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이웃들은 그를 하녀 취급하고, 그를 이용해 프랑스 국적을 얻으려는 남성들에게 버림받기를 반복한다.

다음 편의 주인공은 라시다와 반대 처지인 남작 부인 테레즈다. 프로방스 성에서 귀족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테레즈는 ‘매일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삶’을 비정상적으로 여긴다. 얼핏 축복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지만 저자는 그 이면의 슬픔을 응시한다. 위계와 의례에 의해 유지되는 귀족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 어차피 소멸할 수밖에 없는 사회집단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귀족의 품위를 사수하기 위해 분투하는 테레즈의 삶 역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테레즈는 상상도 못할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인 마농은 현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전 남편과 그의 새 부인까지 다같이 떠나는 뉴욕 여행을 계획한다. 당차고 자율적인 삶을 사는 듯한 마농이지만 수년째 정신과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자신을 휘두르려 하는 어머니, 50대에 다다르면서 더 이상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없다는 불안이 그를 우울과 무력감에 빠지게 한 것이다. 외적으로 아름답고, 일에서는 완벽하며, 내적으로는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파리지앵에 대한 요구와 편견이 마농을 짓누르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 살고 있는 프랑스 여성들 역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한국 여성들 못지않게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